작가 이와이즈미, 안드로이드 오이카와.
가볍습니다. 가벼운 거 쓰고 싶어서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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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 하나를 분양받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은 것은 열흘 전쯤이었다. 한창 신제품을 개발 중인데 상품성을 인정받지 못하면서 여러 개체에게 폐기처분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친구에게는 금이야 옥이야 만들어낸 안드로이드인지라 그렇게 폐기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이와이즈미는 듣자마자 거절했고 친구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물러서지 않았다.
“이와이즈미, 제발. 이 시대에 너처럼 뒤떨어진 애가 어디 있어? 어느 집에 안드로이드 한 체가 없냐고. 적어도 청소용은 하나 둬야할 거 아니야. 글 쓰면서 마실 커피도 타달라고 하고. 넌 무슨 애가 그렇게 꽉 막혔냐?”
“그게 부탁하는 사람의 태도야?”
“부탁합니다, 이와이즈미님. 우리 오이카와를 거둬주세요.”
“오이카와?”
“너한테 보낼 안드로이드 이름이야.”
뻔뻔하기도 하지. 받겠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저 쪽에서는 이미 확정이 난 것처럼 굴었다. 그는 그 ‘오이카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 설명했다. 농담도 하고 감정표현도 훌륭하고 인공지능이 얼마나 높은지 사람이랑 똑같다고 자기 기술에 감탄을 했다. 그 대단한 안드로이드가 왜 폐기처분 되었냐고 물으니 친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무 사람 같아서 그렇지.”
그 다음에는 인간의 쓸데없는 자존심이 과학의 발전에 얼마나 큰 방해가 되는지 일장연설을 시작했기에 더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안드로이드라니, 이와이즈미의 인생에서는 없을 말이다. 그는 날 때부터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무엇이든 로봇의 힘을 빌리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물론 통신기기 같은 기본적인 것은 갖고 있었지만 그밖에 청소나 요리, 혹은 장을 보는 것까지 입력한 대로 되어있는 것이 썩 기쁘지 않았다. 혹자는 부지런하다고 말해주었지만 때로는 멍청한 거라며 고개를 젓기도 했다. 어쨌든 그런 그가 여태껏 안드로이드를 구매하지 않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안드로이드를 들인다 하더라도 일을 시켜먹지 않는다면 시간마다 배터리를 충전해야하니 오히려 일거리만 늘어나는 셈이었다. 친구의 제안도 그때뿐이지 얼마 지나자 깨끗하게 잊어버렸다.
그러니 갑작스럽게 찾아온 방문자에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한 것은 당연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마감을 하던 와중 누가 초인종을 누르기에 밖을 내다보았는데 웬 남자가 문 앞에 서있었다. 그는 이와이즈미의 얼굴을 보더니 활짝 웃으며 “안녕하세요!”하고 허리를 꾸벅 숙였다. 그리고는 활기찬 목소리로 “말은 들었지만 이 문은 정말 구식이네요!”라고 말하는 것이다. 너무 기가 차서 입을 벌린 채 남자를 보다가 말없이 문을 닫았는데 밖에서 헉 하고 숨을 삼키며 문을 두드렸다. 마치 이럴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는 태도였다. 당연히 무시했지만 남자는 끈질기게 문을 두드려댔다. 처음에는 똑똑, 하고 두 번씩 두드리는 걸 천천히 반복하더니 지금은 꼭 기계처럼 똑, 똑, 똑, 똑 하고 일정한 박자로 두드리고 있었다. 그걸 한참 하고 있으니 미치겠는 쪽은 이와이즈미였다. 아무리 귀마개를 하고 노래를 크게 틀어도 저 박자가 귓속을 파고들어서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결국 문을 다시 열자 남자는 정말로 기쁜 듯 활짝 웃었다.
“안녕하세요!”
“당신 뭐야? 뭔데 남의 집 문을 두드려. 경찰 부를까?”
이와이즈미는 경찰이 오기 전에 이미 뭐라도 휘두를 것처럼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자 남자는 당황한 얼굴로 문짝에 달린 숫자와 이와이즈미의 얼굴을 번갈아 볼 뿐 물러설 기색은 없었다. 이와이즈미가 도로 문을 닫으려는 순간, 남자가 문을 붙잡았다. 하얀 얼굴과 달리 힘이 어찌나 센지, 문이 순간적으로 덜컥거렸다. 이와이즈미는 당황해서 경첩을 올려다보기까지 했다.
“저기, 이와이즈미 씨 아닌가요?”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저는 오이카와인데요. 여기로 가면 이와이즈미 씨가 돌봐주신다고……. 여기, 여기 맞는데? 제가 출력기능이 없어서 박사님이 적어주신 주소를 보여드릴 수는 없지만…….”
그제야 이와이즈미는 무언가를 떠올려냈다. 열흘 전에 친구가 보내겠다고 고집을 피우던 안드로이드의 이름이 오이카와였던 것 같기도 했다. 아, 그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머리가 띵해졌다. 문고리를 쥐고 눈을 감으니 오이카와가 살며시 팔을 잡아왔다.
“이와이즈미 씨, 괜찮으세요? 아파요?”
고개를 들고 오이카와를 살폈다. 반듯한 얼굴에 걱정이 가득 들어찬다. 아무리 봐도 안드로이드인 줄 모르겠다. 물론 요즘 세상에 척 보고 사람인지 아닌지 구분되는 안드로이드가 몇이나 있겠냐만 이건 너무 심했다. 일단 말하는 것도 너무 사람이잖아. 집에 안 들여보내준다고 당황하는 안드로이드가 어디 있냔 말이다. 오이카와의 손을 슬쩍 떼어내며 허리를 세웠다. 그러자 오이카와도 따라서 반듯하게 섰다.
“그래서 네가 오이카와라고?”
“맞아요.”
“나한테 보내진 안드로이드라고?”
“뭔가 문제가 있나요?”
있지. 아주 많다. 이와이즈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뜨며 “일단 들어와.”라는 말로 오이카와를 잡아끌었다. 이와이즈미의 집에 발을 들인 최초의 안드로이드였지만 두 사람은 그런 일에 감격할 여유가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당황스러웠고 오이카와는 어리둥절했다. 오이카와를 소파에 앉힌 후에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를 않았다. 로봇에 미친놈이 늘 그러하듯이 핸드폰은 저기 어디에 던져버리고 헛짓거리를 하는 모양이었다.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내려놓고 그 자신도 소파에 풀썩 앉았다. 엉덩이가 미끄러져 거의 눕는 듯한 자세가 되었다.
“아, 미치겠다.”
“미치면 큰일 나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은 채 오이카와를 돌아보았다. 그는 이미 이와이즈미 쪽으로 돌아앉아 있었다. 가만 보고 있으니 제법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만들었으니 당연한 지도 모르겠다. 이와이즈미는 한참이나 오이카와와 눈을 마주치다가 손가락을 까딱까딱 움직였다. 오이카와는 의문을 띤 얼굴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흠, 하고 생각하다가 손을 뻗어 오이카와의 머리카락과 이마, 그리고 뺨이나 귀를 만져보았다. 정말 사람의 것처럼 부드러웠는데 그보다 신기한 것은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쫓아오는 시선과 낯설어하는 얼굴이었다. 생각하는 게 다 보일 정도로 얼굴 표정이 다양하다는 게 꽤나 신기했다.
“너 정말 안드로이드야?”
“그럼 사람이겠어요?”
“사람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그러자 오이카와는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그에게는 사람 같다는 말이 칭찬인 모양이었다. 그를 가만히 두고 다시 핸드폰을 들어 한참을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아오는 것은 수화음 뿐이었고, 몇 번 반복하자 전화기가 꺼졌다는 안내까지 들렸다. 이와이즈미는 핸드폰을 쥐고서 친구가 핸드폰을 꺼버린 건지 아니면 너무 전화를 해대서 배터리가 나간 건지 생각하다가 그게 아무 의미도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얘기 좀 하자.’라고 문자를 남겨놓은 채 핸드폰 벨소리만 켜놓았다. 작업하는 동안 방해 받기 싫어 내내 무음이었으니 벨소리를 켜놓는 것도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이와이즈미가 핸드폰과 씨름하는 사이 오이카와는 자기가 가져온 가방에서 뭔가를 꾸물꾸물 꺼내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조금 빼고 오이카와가 뭘 하는지 쳐다보았다. 안드로이드를 들인 적 없는 그에게는 난생 처음 보는 물건들이었지만 그 모양새로 봐서 충전기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오이카와는 충전기의 선을 돌돌 풀며 이와이즈미에게로 고개를 홱 돌렸다.
“이와이즈미 씨.”
“어어.”
“저 충전해도 되나요? 오다가 길을 헤매서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소모 됐어요.”
“충전 안하면 어떻게 되는데?”
“배고파요.”
전원이 나가는 거라면 친구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 자게 내버려두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했건만, 배가 고프단다. 아무리 안드로이드라도 저렇게 사람처럼 생겼는데 굶길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눈을 깜박이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뭐해? 이리 줘.”
“어디 있는지 알려주시면 제가 할게요.”
“아니, 넌 지금 손님 같은 거니까. 내가 할게.”
그러자 눈에 띄게 시무룩한 얼굴을 했다. 어깨가 축 쳐져서 그대로 녹아내릴 것처럼 보였다. 이와이즈미는 할 말을 잃은 채 손을 거두었다. 오이카와는 충전기를 꽉 쥔 채로 내밀지 않았다.
“저는 손님인가요?”
“뭘 기대하는지 아는데 난 안드로이드가 안 맞아.”
“저를 공짜로 줘도 싫은가요?”
그렇게 말하고는 커다란 눈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사람의 눈물이라면 정말 그럴 수는 없었는데, 그 모양새가 더 처량 맞아 보였다. 그걸 달래지도 못하고 가만히 있자니 영락없이 이와이즈미만 나쁜 놈이 되었다. 공짜로 줘도 싫냐니. 틀린 말은 아닌데 그렇게 말하자니 욕보다 더했다. 이와이즈미는 결국 오이카와의 어깨를 살살 어루만지며 “지금 당장 보내겠다는 게 아니고…….”라고 말해야했다. 그 말을 들은 오이카와가 고개를 번쩍 들고 이와이즈미를 빤히 쳐다본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는 여전히 눈물이 똑똑 떨어지는 뺨을 손바닥으로 닦으면서 “정말요?”하고 물었다. 아, 여기서 그렇다고 대답하면 안 된다는 걸 그는 정말 잘 알고 있었다.
“응.”
그럼에도 결국 그런 대답을 한 것은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이었다. 오이카와는 정말로 기쁜 듯이 활짝 웃고서 “충전기를 어디에 꽂으면 될까요?”하고 물었다. 손가락으로 아무 콘센트나 가리키자 들뜬 발걸음으로 걸어간다. 콘센트에 코드를 꽂고서는 옷의 등 쪽을 걷어 올렸다. 대충 어떤 방식인지 알 것 같다고 생각하며 소파에 드러누웠는데 오이카와는 한참동안 코드를 꽂지 못하고 부스럭 거렸다. 처음에는 알아서 하겠거니 무시했지만 그렇다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이와이즈미는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
“아무 것도 아니에요.”
“너 그러다가 굶어 죽는다.”
그렇게 말하니 눈치를 보다가 선을 내민다. 그냥 단순한 구조의 코드인데 왜 꽂지를 못하는지 모르겠다. 한숨을 쉬며 오이카와의 옷을 휙 들춰 등에 코드를 꽂아주었다. 찰칵 맞물리며 작은 기계음이 나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새삼스럽게 안드로이드가 맞긴 맞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제 됐지?”
옷을 내려주며 물으니 오이카와가 등을 더듬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이즈미는 그대로 컴퓨터 앞에 앉아 화면을 들여다보았지만 제대로 집중이 되지 않았다. 고작 안드로이드라 해도, 옆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있으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법이었다. 이와이즈미는 결국 뒤를 돌아보았다. 예상대로 오이카와는 아무 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가만히 앉아 이와이즈미의 등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 눈이 마주치자 새삼 반갑다는 듯 웃는데 말문이 막혔다. 그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 이마를 짚다가 책장을 가리키며 “책은 읽어?”하고 물었다.
“물론이죠.”
“그럼 아무거나 빼서 읽어.”
오이카와는 눈을 깜박이다가 자기 등에 연결된 선을 뽑아 책장 앞에 섰다. 그리고는 이와이즈미의 눈치를 보며 “이와이즈미 씨가 쓴 책을 읽어도 되나요?”하고 물었다. 그가 글을 쓴다는 건 어디서 들었는지 모르겠다. 친구 녀석이 일러줬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오이카와는 들뜬 얼굴로 입술을 깨물며 책 한 권을 골라갔다. 그 다음에는 다시 콘센트 앞에 앉아 선을 가지고 한참 헤매는 걸 반복했다. 이와이즈미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오이카와의 충전을 도와주러 가야했다.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코미디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마냥 웃기에는 마음이 착잡하였다. 문득, 이 녀석을 돌려보내면 어느 주인이 매번 충전을 도와줄까 싶었지만 고개를 빠르게 저어내며 조용한 핸드폰만 노려보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오이카와는 그저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참으로 속편한 로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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