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 고백을 받았다. 좋아해, 너를 좋아해. 그녀는 그 말이 내게 닿지 않으리라는 걸 아는 듯 했다. 마치 문 앞까지 와서 제대로 두드리지도 않고 떠나는 손님처럼 처연한 고백이었다. 환호로 가득 찼던 교실이 차츰 숙연해졌다. 내가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그녀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까만 머리카락이 쏟아져 뺨이 다 가려진 채로 소리 없이 흐느꼈다. 그녀를 만난 건 그 날이 처음이 아니었다. 우리 사이에는 분명 어떠한 교류가 존재했고 내게는 고백을 받아줄 어떠한 권리 혹은 의무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그 날에 이르러 그녀에게 자포자기에 가까운 고백을 하도록 만든 것은 내 우주에 아직 네가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좋은 아이라는 인상만 남아있을 뿐 뺨이며 눈이 뿌옇게 그려진다. 반면에 오이카와의 얼굴을 떠올리는 일은 너무도 쉬웠다. 하얀 얼굴 위로 누가 손수 새긴 것처럼 알맞게 들어찬 눈코입이나 내 어깨에 부벼오던 발간 뺨, 단정하게 챙겨 입은 교복 아래 삐죽삐죽 나온 손과 발을 하나하나 그려낼 수 있었다. 오이카와의 교복은 다른 아이보다 조금 짧은 편이었는데, 키가 더 자랄 거라며 한참은 크게 맞췄던 길이보다 더 자랐기 때문이었다. 운동화와 교복 사이로 드러난 발목을 만지면서 줄어든 교복이 날라리 같지는 않은지 걱정하곤 했던 것이 눈앞에 선하다. 그걸 두고 “좀 날라리 같아 보이면 어때? 아니면 그만이지.”라고 말했었다. 그에 오이카와는 “그치만, 같은 고등학교 가고 싶은 걸.”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래, 그때는 그런 것들이 참으로 걱정이었다. 어쩌다 받은 벌점 하나에 고등학교가 달라질까 어깨가 움츠러들었던 어린 나날.
오이카와가 지구를 떠난 것은 그 어린 나날 중 하나였다.
이렇게 두고 보니 참 낭만적인 문장이 아닐 수 없다.
2. 소나기가 쏟아지던 날이었다. 우리는 건물 벽에 바짝 붙어 아주 좁은 지붕에 머리를 맡겼다. 오이카와는 곱게 세팅한 머리가 다 젖는다면서도 뭐가 그리 즐거운지 함박웃음이었다. 서늘한 벽에 등을 기댄 나와 달리 오이카와는 한 걸음 더 나가있었다. 그 애의 어깨가 자꾸만 젖어들었기 때문에 팔을 쥐어 한 걸음씩 당겼다. 그때마다 오이카와는 웃음을 터뜨리며 도로 한 걸음 나갔다. 내가 말리는 걸 포기하자 이번에는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밖으로 내밀었다. 손바닥 위로 한참이나 비를 모으다가 그것을 자기 코앞에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그 터무니없는 짓에 “바보야, 그러다 정말 감기 들어.”라며 핀잔을 주자 손가락을 벌려 아주 조금 고인 물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나도 모르게 그 애의 손가락에 엉겨 붙은 물방울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는 내 시선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가 천천히 들었다.
“있잖아…….”
오이카와는 말을 하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눈을 한 번 굴렸다가 내 손을 꽉 잡았다. 오랫동안 비를 맞아 손이 차갑고 축축했다. 나는 왜 그러냐 묻지도 못하고 오이카와가 입을 열기만 기다렸다. 입술이 열렸다 닫히기를 열댓 번, 오이카와는 한참 후에야 울듯 웃으며 말했다.
“첫키스 나한테 줘.”
목덜미가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오이카와는 그런 내 팔을 붙잡고 응? 하고 졸랐다. 우리는 단 한 번의 사랑고백도 없었지만 그 순간에는 그런 것이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툴고 느리게 입을 맞췄다. 잠시 떨어졌던 입술이 다시 맞붙으려는 때에 오이카와는 두 눈을 꾹 감은 채 고백했다. 나 너랑 고등학교 같이 못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