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와오이 교류회 2회 웹공개
* 감금, 얀데레 주의
* 제목은 키린지의 곡 Aliens의 가사에서 가져왔습니다.
이로써 벌써 세 번째였다. 뻑뻑한 눈을 깜박거리며 어두운 방안을 차분히 훑었다. 흐릿하기는 해도 방안의 구조는 알아볼 수 있었다. 익숙한 침실에 나 혼자 덩그러니 누워있다. 몸을 일으키려고 손으로 침대 시트를 짚자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팔에 힘을 주어 당겨보니 침대에 고정되었는지 일정 거리에서 손목이 꽉 조였다. 불이라도 켤 수 있으면 좋으련만, 침대에서 한 발 내려서는 것까지가 한계였다. 그마저도 손이 낮게 묶여있어서 자세가 영 불편했다. 묶이지 않은 손으로 목을 주무르며 “오이카와.”하고 불렀다. 방밖에 있는 것을 뻔히 아는데 대답이 없다. 침대에 걸터앉아 수갑을 만지작거렸다. 이걸 보는 것도 세 번째, 닫힌 문 너머의 오이카와를 기다리는 것도 세 번째였다.
외출을 준비할 적에는 분명 해가 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오이카와에게 “오늘 늦을 거야.”라고 말했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오이카와가 내 쪽으로 고개를 홱 돌리며 날선 목소리를 냈다.
“그런 말 없었잖아.”
“미안. 약속이 갑자기 잡혔어.”
오이카와의 어깨를 스치듯 쥐며 방안으로 들어갔다. 핸드폰 메시지가 오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울렸다. 재촉하는 친구의 문자가 틀림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혼자 중얼거리며 지갑을 넣어둔 가방을 뒤적거렸다. 거실에서부터 발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오이카와가 방문에 걸쳐 서서 나를 빤히 보았다.
“누구 만나는데 그렇게 급해?”
“대학 동기. 오이카와, 내 지갑 못 봤어?”
“대학 동기 누구?”
지갑을 통 찾을 수가 없었다. 가방을 거꾸로 들어서 탈탈 털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몸을 일으켜 책상을 뒤적거리며 “너 저번에 만난 애들 있잖아.”라고 답했다. 그러자 등 뒤로 아, 하는 낮은 소리가 들렸다. 지갑을 분명 가방에 뒀는데 거기에도 없고 책상 위에도 없다. 날이 많이 따뜻해져서 외투를 입은 적도 없건만 손은 자연스럽게 외투 주머니를 뒤적거리고 있었다. 다시 오이카와를 보며 “내 지갑 못 봤어?”하고 물었다. 그러자 오이카와는 입술을 깨물며 웃었다. 그의 손가락이 서랍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가 나가는 게 그렇게 싫어?”
“뭐가?”
서랍을 열자 지갑이 그 안에 들어있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려는데 오이카와는 이미 방밖으로 나가있었다. 그 뒤를 따르며 “오이카와, 너 왜…….”하고 운을 띄운 찰나였다. 내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내 쪽으로 돌아섰던 오이카와는 내가 전화 받는 걸 보더니 다시 몸을 돌렸다. 눈가를 짚으며 전화를 받았다. 보나마나 재촉 전화일 게 뻔했다. 전화를 받는 사이 오이카와는 부엌에서 부스럭거렸다. 적당히 나갈 테니 먼저 놀고 있으라고 답하며 전화를 끊었다. 부엌으로 들어서자 식탁 위에 빵과 음료수가 놓여있는 게 보였다.
“이게 뭐야?”
“먹고 가. 빈속에 술 마시면 안 좋잖아.”
식탁을 짚은 오이카와의 손이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으니 오이카와가 손을 등 뒤로 감추며 웃었다. 시계를 보니 시간이 많이 늦어있었다. 자리에 앉아 음료수를 마셨다. 달고 시원한 음료가 목구멍을 타고 흘렀다. 오이카와가 옆으로 걸어와 내 어깨를 살짝 쥐었다. 오이카와와 마주친 눈에서 만족을 읽었다.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다.
수갑을 세게 당겨본다. 소리만 요란할 뿐 끄떡도 없었다. 그럼에도 몇 차례 더 힘을 주었다. 얼마 가지 않아 손목이 아려오기 시작했다. 수갑 안에서 손목을 둥그렇게 돌렸다.
“오이카와.”
당연한 이야기지만 여전히 답이 없다. 말도 없이 약속을 어겼으니 동기들은 걱정을 하거나 화가 단단히 났을 것이다. 나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해야겠고 해가 뜰 때까지 얼마나 남았는지도 알고 싶었다. 또 이번에는 얼마나 더 이렇게 지내야하는 지도……. 온갖 의문이 밀려오지만 그보다 앞선 것은 이상할 정도의 졸음이었다. 아득한 기분을 느끼며 도로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다시 눈을 뜬 것은 날이 밝아온 후였다. 깨고 나서야 아직 약이 다 빠지지 않았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약기운이 완전히 가셨는지 정신이 맑았다. 어쩌면 손목을 괴롭힌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수갑 채워진 손을 눈앞으로 들어 올리니 벌겋게 부어오른 손목이 보였다. 오이카와는 단 한 번도 수갑을 꽉 조이게 채워둔 적이 없었다. 이건 내가 손에 힘을 주어 당길 때마다 생긴 자국이었다. 수갑 안으로 엄지를 밀어놓고 천천히 쓸어보았다. 아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상체를 일으키며 문 너머를 응시했다.
“오이카와, 이리 좀 와봐.”
일부러 숨을 죽이며 텀을 둔다.
“네가 먹인 약이 잘못 됐나봐. 머리가 너무 아파.”
별다른 연기도 필요 없었다. 말을 마치자마자 밖에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오이카와가 들어섰다. 잠들기 전에 보았던 대로 손을 벌벌 떨고 있다. 고작 몇 걸음을 달렸을 텐데 숨까지 헐떡일 것처럼 초조해보였다. 그는 바짝 마른 입술로 물었다.
“아파?”
눈을 느리게 꿈벅거리다가 낮게 웃었다.
“겁쟁이.”
그제야 오이카와의 떨리던 손이 가라앉는다. 크게 뜬 눈이 금방이라도 거짓말이야? 하고 물을 것 같다.
“그렇게 겁이 많은데 나한테 약을 먹였어?”
헛웃음이 나왔다. 수갑 채워진 팔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의 시선이 내 손목에 닿는다. 오이카와는 입술을 깨물며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그 손을 세게 잡아 내 쪽으로 당겼다. 오이카와는 화들짝 놀라며 내 손목을 감싸 쥐었다. 부은 것뿐인데 그가 보기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오이카와는 내 침대 앞에 꿇어앉아 부은 자리를 살펴보았다. 가지런한 속눈썹에 걱정이 내려앉았다. 그는 내 손목을 침대에 내려놓으며 “약 가져올게.”라고 말했다. 다시금 오이카와를 잡아당겼다. 그는 몸을 내 쪽으로 기울이며 고개를 들었다.
“이제 풀어줘.”
이별의 말을 뱉는다면 이런 얼굴을 하겠구나.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만큼이나 절망적인 모습이었다. 그는 입술을 빠금 벌린 채로 내 시선을 피했다. 아무 말도 못들은 척 입가에는 어색한 미소를 띠운 채였다. “오이카와.” 그의 얼굴 근처에 손을 가져다대자 당연하다는 듯 뺨을 기대온다. 따뜻한 부피감이 마음에 들어 손가락으로 천천히 쓸어보았다. 울었는지 눈가가 빨갛게 짓물러있었다.
“나 어디 안 가. 풀어줘.”
오이카와는 여전히 못 들은 척 눈을 감았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게 고스란히 보였다. 몸을 숙여 키스를 하려다가 뒤로 물러났다. 어느샌가 오이카와는 도로 눈을 뜬 채였다. 의문과 오해, 의심이 가득한 눈을 들여다보며 이번에는 무엇이 문제였을까 생각해보았다.
처음에는 이유가 확실했다. 이렇듯 모든 연락수단을 빼앗긴 채 방안에 갇힐 만한 이유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분명한 계기가 있었다. 비가 오던 날이었고, 내게는 우산이 없었다. 오이카와를 부를까 생각도 했지만 굳이 피곤한 애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던 탓에 근처 편의점까지 달려 우산을 사려고 마음먹었다. 제법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져지를 뒤집어쓰는 편이 나을까 고민하던 찰나 대학팀 선배가 우산을 같이 쓰겠냐고 물었던 것이다. 한 번은 사양했지만 어차피 가는 길이고 적적하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집으로 가던 길에 날 마중 나오던 오이카와를 만났다. 선배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오이카와의 우산 속으로 들어갔다. 그 우산 아래에서 오이카와는 딱 한 마디를 물었다.
“왜 전화 안 받았어?”
그 말에 가방을 뒤적여 핸드폰을 찾아냈다. 부재중 전화가 세 통이나 찍혀있었고 마중을 나가느냐고 묻는 문자도 여러 개였다. 빗속을 걸어오느라 전화가 오는 줄도 몰랐다고 말했지만 오이카와는 입을 꾹 다문 채였다. 집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나오니 오이카와가 시원한 물을 건넸다. 얼떨떨한 기분으로 물었다.
“너 화난 거 아니었냐?”
그 때도 오이카와는 손을 등 뒤로 감추며 웃었다.
“내가 이와쨩한테 왜 화를 내겠어.”
감추려고 해도 감춰지지 않는 감정들이 있다. 특히나 그와 나 사이에서는 더욱 그랬다. 나는 그의 웃는 얼굴 아래에서 의심과 오해를 읽었다. 물을 쭉 들이켠 후에 우산을 같이 쓰고 온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했다. 그러나 시야가 빠르게 흐려지는 것과 동시에 오이카와가 “조심해, 이와쨩.”하고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손이 내 어깨를 붙잡는 걸 어렴풋하게 느끼면서 의식을 잃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풀려나기까지 일주일이 조금 넘게 걸렸다. 오이카와는 수갑을 풀면 날 영영 보지 못할 것처럼 굴었으며 자다가도 일어나서 내 수갑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겁에 질린 건 내가 아니라 오이카와 쪽이었다. 나는 물을 마신 직후에 하려던 말을 일주일에 걸쳐서 해야 했다. 어쩔 수 없이 수갑을 풀어주던 오이카와의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그날 내가 집을 나갔다 돌아왔을 때 오이카와는 내 어깨에 고개를 묻고 한참을 울었다.
어디에서 비롯된 불안인지 알 수 없으나 그것은 이미 생겨났으며 완전히 없앨 수 있는 종류의 감정이 아니었다. 이후로도 오이카와는 내가 집을 나설 때, 누군가와 긴 통화를 주고받을 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얼버무릴 때마다 행동이 느려졌다. 그때마다 오이카와를 옆에 앉혀놓고 어디를 가는지, 누구와 무슨 용건의 이야기를 했는지,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하나하나 읊어주었다.
그럼에도 두 번째 일은 일어났다. 반년정도가 흐른 때였다. 답답한 마음에 수갑을 만지작거리며 오이카와에게 물었다.
“내가 바람피울 사람으로 보여?”
그러자 오이카와는 사색이 되어서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좋아질 수는 있잖아…….”
“뭐?”
어이가 없어서 코웃음을 치다가 침대에 털썩 누웠다. 오이카와가 불안한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걸 올려다보다가 말했다.
“그럼 평생 이러고 살지 뭐.”
자포자기에서 비롯된 농담이기도 했지만 진심이 섞여있었다는 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오이카와도 그걸 알았다. 그는 조용히 침대에 걸터앉아 내 수갑을 만지작거리며 “정말 이러고 살 수 있어?”하고 물었다. 나는 눈을 감으며 “응.”하고 답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수갑은 이미 풀려 있었다. 일주일에서 이틀로 줄어들다니, 대단한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방에 갇힌 것은 그로부터 삼 개월만의 일이다. 어쩌면 다음은 한 달 반이 걸릴 지도 몰랐다. 침대 아래 주저앉은 오이카와의 얼굴이 지쳐보였다. 내 등 뒤로 빛이 내리쬐는데 눈부신 줄도 모르고 눈 한 번 깜박이질 않는다. 그의 팔꿈치를 단단히 붙잡고 내 쪽으로 잡아당겼다. 오이카와는 너무도 순순히 침대 위로 올라왔다. 우리는 침대에 비스듬히 마주앉아 가만히 시간을 흘려보냈다. 이따금 오이카와가 내 손등을 쓰다듬으면서 “아파?”하고 묻는 것이 전부였다. 내내 괜찮다는 답을 하다가 무심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오이카와는 한껏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 걱정했어.”
그 말이 조금 우스워서 “내 탓이야?”하고 물었지만 오이카와는 내 어깨를 끌어안을 뿐 답하지 않았다. 그 나름의 고집이라는 걸 모를 리 없다. 수갑 찬 손을 늘어뜨리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다음이라……. 조그맣게 중얼거리자 오이카와의 몸이 경직되었다. 모른 체 하며 물었다.
“이번에는 뭐가 문제였어?”
오이카와는 내게 기대었던 고개를 들었다. 그는 마치 깊은 물속에 잠긴 물고기처럼 아주 느리게 숨을 쉬었다. 눈동자 표면으로 빛이 흩어진다. 그 어둑한 시야 속에 담긴 사람은 나 하나였다.
“아무 문제없었어.”
그는 수갑의 매끈한 면을 만지작거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그냥 이와쨩을 내보내고 싶지 않았어.”
그러면 안 돼? 물음을 던질 적에는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코앞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표정이 다채롭게까지 여겨졌다. 내가 답을 하지 않자 오이카와는 내 어깨 너머로 커튼을 쳤다. 이제 방안으로 들어오는 빛은 커튼의 굽이굽이마다 숨어드는 작은 조각뿐이었다. 오이카와는 그것마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커튼의 끝을 짧게 당겼다가 나를 보며 다시금 물었다.
“그래도 괜찮아?”
오이카와의 손이 초조하게 내 소매를 훑었다. 자꾸만 미끄러지는 그의 손을 잡으며 “그래.”하고 답했다. 그러자 오이카와의 얼굴 위로 환한 빛이 떠올랐다. 곰인형을 선물 받은 여자아이도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식탁 위에 놓인 음료수를 보면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짐작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카와의 떨리는 손을 보고 있노라면 그걸 뿌리치고 나갈 수가 없었다. 그가 집안에 홀로남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지 헤아리는 것보다는 눈앞의 잔을 들이키는 것이 나았다. 손목의 절그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오이카와가 내게 건넬 수많은 잔을 떠올렸다. 어떤 날은 물이었다가, 어떤 날은 술일지도 모르고, 또 어떤 날은 달디 단 과일음료일 수도 있다. 희뿌연 의식 속을 헤매다 눈을 뜨면 세상에서 가장 처량한 사람이 내 옆자리에 눕지도 못한 채 마냥 울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불안해하는 그를 한껏 눈에 담다가 내 옆에 뉘여 놓고 불가능한 것들을 상상할 터였다. 이를 테면 이 방을 상자로 만들어 선물하면 네가 지을 표정 같은 것들……. 오이카와가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지워내면서 오이카와가 그러하듯 나를 책망하였다.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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