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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큐

[이와오이] 낙서

제목이 낙서가 아니라 진짜 낙서. 트위터에 올렸던 것 가져왔어요




1. 누가 너를 온전히 미워할 수 있을까. 너는 내내 사랑스럽다. 비틀어진 입술로 못난 이야기를 하더라도, 구박 받을 행동을 하더라도. 누구도 너를 증오할 수는 없는 법이다. 너는 봄에는 따사롭고 겨울에는 안쓰럽다. 쌀쌀맞을 날이 없다. 하지만 이런 진심을 너에게 전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네게 내 속을 들키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너와 달리 나는 봄에는 텅 비고 겨울에는 두텁다. 아마도 너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겠지만, 네 앞에서 나는 늘 버석한 모래알처럼 하찮게 여겨지는 것을 어찌할 도리가 없다.


2. 때때로 너를 데리고 코트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다. 너의 손을 단단하게 붙잡아 높낮이조차 없는 그 흰 선을 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끝이 난다. 어느 것도 남지 않고 우리는 더 이상 끝이 보이지 않는 벽을 기어오르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다. 비록 기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슬프지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상상을 종종 했다. 실은 어느 때에는 매일 밤마다 했다. 어쩌면 너를 볼 때마다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는 몇 번이고 주저앉으면서도 까진 무릎을 툭툭 털고 사내아이답게 일어서곤 했다. (이런 표현이 열아홉 먹은 동갑내기 남자애에게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나 보기에는 그랬다.) 그리고는 배구공을 끌어안고 환하게 웃으며 펑펑 우는 것이다. 그 말도 안 되는 표정을 볼 때마다 언제나 마음속에서 붙잡고 있던 너의 손을 놓았다. 너를 위해 놓았다. 나의 배구는 오로지 너의 것이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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