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치료 겸해서 시작한 건데 너무 힘들쟈나 이거 얼른 끝내고 달달한 거 쓸 거예요(개구라
근데 이것두 키워드랑 비교하면 생각보다 달..달달한 것 같은..(힐끔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가 가장 오래 시간을 보내는 때는 일요일 저녁이었다. 오이카와는 월요일이면 집에 일찍 돌아오기도 했지만 집에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고 곧장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옆에서 통화하는 것을 보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친구가 많은 것 같았으니 당연한지도 몰랐다. 토요일도 비슷하게 흘러갔는데, 일요일만큼은 꼭 집에서 저녁을 먹었다. 그러다보니 이와이즈미도 오이카와에게 맞춰 일요일 저녁은 집에서 먹게 되었다. 그것은 두 사람 사이의 불문율과도 같았다. 이와이즈미는 저녁을 차리다가 오이카와가 늦어도 먼저 저녁을 먹지 않았고, 연락이 없어도 꼭 오이카와 몫의 식사를 준비했다. 오이카와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요일 저녁의 이와이즈미는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오이카와 몫의 저녁식사도 함께 만들었다. 식사라고 해봐야 남자 둘 사는 집에 거창한 음식이 나올 일은 없다. 찌개를 끓이고 밥을 짓고 나면 이미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반찬가게에서 사온 반찬을 꺼내는 일만 남는다. 이와이즈미는 밥솥에서 밥을 꺼낼까 하다가 잠시 시계를 보았다. 오후 여섯 시 반, 평소라면 오이카와가 돌아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이와이즈미는 밥주걱을 밥솥 위에 얹어놓고 소파로 와 TV를 켰다. 흔한 가족 다큐멘터리가 방영하고 있었다. 피로 이루어져 가난을 극복하는 그네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와이즈미는 소파에 더 깊숙이 몸을 밀었다. 그 가족들이 지원을 받게 되는 무렵에 다시 시간을 확인했다. 오후 일곱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콧등을 긁으며 고민하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슬슬 허기가 졌다. 오이카와 토오루라고 성과 이름을 똑바로 적어놓은 이름을 찾아 전화를 거는 순간이었다. 계단을 급히 오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달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이와이즈미가 현관 쪽을 내다보니, 오이카와는 손등으로 입을 막은 채 숨을 헉헉 거리고 있었다. 그의 가방 속에서는 방금 이와이즈미가 건 전화 때문에 벨소리가 울렸다.
“밥 먹었어요?”
오이카와는 가방을 뒤적거리며 다급하게 물었다. 이와이즈미는 “전화 내가 건 거야.”라고 말하며 부엌 쪽을 가리켰다. 국이 조금 식었지만 다시 데우면 될 일이었다. 오이카와는 그것을 보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늦어서 죄송해요.”
“왜 늦었어?”
“연습하다가 시간 가는 걸 모르고…….”
이와이즈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국을 다시 데우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오이카와가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평소보다 행동이 따끔따끔한 것을 보니 저녁식사에 늦어버린 것이 못내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이와이즈미는 ‘눈치 보지 마.’하고 말하려다가 그 말에 더 눈치를 볼 것 같아 속으로 삼켰다.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면 무슨 대회 같은 거 나가나?”
이와이즈미는 다른 말을 골라 물었다가 금방 무언가를 깨닫고 말을 고쳤다.
“아, 1학년이라서 아직이겠네.”
오이카와는 답이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자기 학창시절을 돌이켜보았다. 1학년 때 주전을 따는 아이는 거의 없었다. 잘한다하더라도 뛰어난 정도가 아니면 2학년이나 3학년에게 양보하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작년까지 본인들이 3학년이었으니 그런 것에 자존심 상해하는 아이들도 흔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가 그런 축일지 가늠해보았다. 오이카와가 답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일까 싶었다. 오이카와는 조용히 반찬 뚜껑을 열어 식탁 위에 가지런히 올렸다. 슬쩍 눈치를 살피니 자꾸만 혀를 손톱만큼 빼물었다가 다시 집어넣었다가, 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가 놓는 것을 반복했다. 훔쳐보기만 해도 덩달아 입안이 바짝바짝 탔지만 조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와 마주보고 앉은 후에야 입을 열었다.
“조만간 예선이 있는데, 혹시 보러 올래요?”
이와이즈미는 들어 올렸던 젓가락을 허공에 멈췄다가 태연하게 반찬을 집었다. 오이카와의 손은 숟가락을 쥔 채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너도 나가? 1학년인데?”
“네, 이번 시합부터요.”
“언젠데?”
“주말이에요! 다음 주 일요일이요.”
이와이즈미는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시합에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지만, 직접 보러오라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이와이즈미는 눈을 한 번 깜박인 후에 물을 삼켰다.
“보러 가면 너네 선배들이랑도 마주치나?”
“아마도 잠깐은…….”
“그러면 너 곤란하지 않겠냐. 아빠라고 하기도 그렇고, 삼촌도 좀 애매하고.”
거절의 뜻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고, 오이카와도 알아들었는지 반색을 했다. 오이카와는 숟가락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면서도 목소리는 장난스럽게 했다. 그러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이와쨩이면 돼요.”
오이카와는 기분이 좋아보였다. 운동하는 애라서 원래 밥을 잘 먹었지만 그 날은 유난히 복스럽게 잘 먹었다. 그러다가 드문드문 “중학생 때 사고 쳤다고 하면, 나만한 아들 있지 않아요?”같은 소리를 해서 숟가락으로 허연 이마를 때려줘야 했다. 그때마다 빨갛게 물든 이마를 손바닥으로 가리면서 우는 소리를 내는 것이 재미있었다. 식사가 끝나면 오이카와가 포트에 물을 올리고 커피를 타왔다. 이와이즈미는 TV 채널을 돌리다가 스포츠 채널에서 배구를 하면 그 자리에 멈췄다. 사실 이와이즈미는 배구를 잘 몰랐다. 학창시절에 운동부에 들지는 않았지만 여기저기 사람이 부족하면 불려가서 경기를 뛰기도 했다. 하지만 늘 축구 아니면 야구, 그도 아니면 농구였다. 그에게 배구는 생소한 경기였다. 턱을 괴고 경기를 보다가 오이카와에게 뭘 물어보면, 저 빠르게 오가는 공을 어찌나 잘도 보는지 척척 대답을 했다.
“방금은 2번 선수가 공을 두 번 만져서 그런 거예요.”
“그걸 어떻게 알아?”
“두 번 만졌으니까?”
그 외에 별달리 설명할 것이 없었다. 오이카와는 자기 눈 위에 손가락을 안경처럼 만들어놓고 “잘 봐요.”하고 말했다. 이와이즈미는 따뜻한 커피를 홀짝이며 “안보이니까 그렇지.”하고 퉁명스레 대꾸할 뿐이었다. 그래도 옆에서 재깍재깍 설명해주는 사람이 있으니 흐름을 놓치는 법은 없었다. 자꾸 보다보니 이와이즈미도 눈에 익어서 이따금 말해주지 않아도 홀로 감탄하는 일이 생겼다. 그때마다 오이카와는 묘하게 뿌듯한 얼굴을 했다.
“배구가 그렇게 좋아?”
“내 첫사랑이에요.”
낯부끄러운 말이었는데도, 오이카와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렇다하더라도 오이카와가 배구에 갖고 있는 마음은 첫사랑만큼 애틋했다. 아직 그가 배구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도 그걸 알 수 있었다.
오이카와의 시합을 일주일 앞두고, 두 사람은 평소와 같은 일상을 보냈다. 아, 오이카와의 일상은 평소와는 조금 달랐을 것이다. 그는 몸 쓰는 일에 있어 신중했고, 연습 또한 더욱 신경 쓰는 듯 했다. 새벽 다섯 시면 졸음에 망설이느라 조금씩 꼼지락거리던 것을 발딱발딱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이와이즈미가 그것을 안 것은 그 시간까지 술을 마시다가 돌아온 토요일 새벽이었다. 오이카와는 술기운에 지쳐 식탁에 앉아있는 이와이즈미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학교 갈 때면 잔뜩 신경 써서 올리는 머리카락이 차분하게 가라앉아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새벽부터 말간 얼굴을 들여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뒤늦게 술 냄새가 신경 쓰였지만 눈앞의 오이카와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원래 금요일 밤에는 이렇게 술을 많이 마셔요?”
“매주 그래, 매주. 나는 금요일이 끔찍해.”
이와이즈미는 이마를 감싼 채 앓다가 오이카와에게 어서 나가보라고 했다. 오이카와는 지극히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애였고, 그걸―심지어 술주정으로―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가 침대에 들어가는 걸 본 후에 나가겠다고 말하며 고집을 부렸다. 이와이즈미는 결국 지끈거리는 머리를 들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걷는 건 싫었지만 침대에 누워버리니 확실히 나았다. 오이카와는 침대 옆으로 기어 올라와 이와이즈미의 정장 재킷을 잡아당겼다. 이와이즈미는 가만히 두라고 하려다가 순순히 벗어주었다. 다음에는 넥타이를 풀어주었는데, 그 때문인지 오이카와를 처음 본 날이 떠올랐다. 그러던 중에 잠이 들었는지 그 이상은 기억나지 않았다. 문득 오이카와가 잘 자라고 말한 것 같기는 한데 가물가물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방에 딸린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커튼을 쳐두었나 생각했지만 그도 아니었다. 하루를 몽땅 잠으로 보낸 모양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은 채 몸을 일으켰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술기운이 가셔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상태가 좋지 못했다. 물을 마실까 고민하던 차에, 협탁에 물과 약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침대 아래로 두 다리를 내렸는데 양말이 어디로 갔는지 없었다. 누구의 짓인지는 너무나도 분명했다. 이와이즈미는 약을 목구멍 가까이 밀어 넣고 물 한 모금을 삼켰다. 그러면서 오늘은 일찍 왔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내일이 시합이라서 그런지도 몰랐다. 방문을 열고 건너편에 있는 오이카와 방의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노크를 해야 했는데’라는 순간의 생각이 인기척을 죽였는지도 모른다. 방문이 열린 뒤에도 오이카와는 돌아보지 않았다. 방과 마주한 벽 쪽에 가만히 서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의아한 눈을 한 채 열린 문을 두드렸다. 오이카와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오이카와, 거기서 뭐해?”
오이카와는 벽을 바라보고 있던 몸을 돌려 이와이즈미를 향했다. 난방을 제대로 해두었는데도 방안이 싸늘하게 느껴졌다. 이와이즈미는 하려던 말을 잊어버렸다. 별 것 아니었는데도 스스로 그 사실에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다. 오이카와는 그런 이와이즈미를 바라보며 염려 담긴 말을 했다.
“아직도 머리 아파요?”
오이카와는 한 걸음 다가오려는 듯 걸음을 뗐다가 그저 멀거니 이와이즈미를 바라보았다. 이와이즈미에게서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이카와는 손에 쥔 것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는 듯 보였다. 이와이즈미와 자기 사이의 거리를 가늠하는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기민한 기류가 이 방과 소름 돋게 잘 어울렸다.
“자면서 앓는 것 같아서, 옆에 약 뒀는데 먹었어요?”
오이카와의 갈색 눈이 이와이즈미의 뺨과 눈가를 훑어냈다. 이와이즈미의 눈이 한 번 깜박거리는 순간까지도 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러한 예민한 시선을 이미 경험한 바가 있었다. 지금의 이와이즈미는 온몸을 통째로 묶인 채 감시당하면서도, 손가락질 한 번에 상대를 고꾸라뜨릴 수 있었다. 다정한 말을 건네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었다. 지난 몇 년간 해온 것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돌처럼 단단한 태도로 손을 내밀었다.
“그거 이리 내.”
오이카와는 몸을 움츠렸다. 입술이 놀란 듯 벌어지고 그 사이로 그늘진 혀가 보였다. 이와이즈미는 불쑥 내밀었던 손을 움츠렸다. 손가락 끝이 파르르 떨렸다. 그는 가만히 서서 자신이 오이카와에게 뱉은 말을 곱씹었다. 이와이즈미의 눈썹이 위로 솟았다가 가라앉았다. 한숨이 흘러나왔다.
“미안해. 화내려고 했던 게 아니야.”
뒤늦게 사과를 했지만 오이카와의 얼굴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는 고개를 재빠르게 저으며 자기가 쥔 것을 내밀었다.
“마음대로 만져서 죄송해요.”
작고 말랑한 유니콘 인형이었다. 한때 이 방에 모빌이 있었을 때, 그 끝에 매달려있던 것 중 하나였다. 오이카와가 이 집으로 오기 전에 모두 떼어내고 쓸어내어 쓰레기봉투에 담았건만 찌꺼기처럼 남아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그것을 받아든 채로 “다른 것도 있었어?”라고 물었다. 그러자 오이카와는 머뭇거리다가 “장난감이요?”하고 되물었다. 말을 덧붙일 필요는 없었다.
“다음에는 그냥 버려줘.”
이와이즈미는 말끝에 ‘줘’를 붙여 강압적으로 들리지 않도록 애썼다. 그건 꽤나 효과가 있어보였다. 오이카와는 굳었던 얼굴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이즈미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인 후에 방을 나가 인형을 휴지통에 버렸다. 뒤따라 오이카와가 밖으로 나와 그 모습을 고스란히 보았다. 얼굴에 의문과 겁, 그리고 걱정이 촘촘하게 들어차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어깨를 두드렸다.
“내일 시합인데 좀 쉬어.”
그대로 방으로 들어가 더 이상 오지 않는 잠이나 억지로 부둥켜안을까 했다.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의 손을 붙잡지 않았더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다. 오이카와는 조심스럽게 “TV 같이 봐요.”하고 제안했다. 뜬금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손을 따라 소파로 걸어갔다. TV에서는 배구 경기를 하는 채널이 없었다. 두 사람은 평소 본 적도 없는 드라마를 틀어놓고 나란히 앉았다. 내용을 모르니 할 수 있는 대화라고는 저 배우의 얼굴이 어떠한지, 대사가 얼마나 유치한지에 대한 것뿐이었다. 저녁은 한참 고민하다가 외식으로 고기를 먹었다. 시간이 늦어서 고깃집에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한가한 식당에서 오이카와는 학교 이야기를 재잘거릴 뿐 유니콘 인형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마치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에게 부모에 대해서 묻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체육관에는 자녀 혹은 형제자매의 시합을 보러 온 가족이 꽤 보였다. 예선이니만큼 시합 자체에 흥미를 가진 사람보다는 연고 있는 사람이 더 많아보였다. 이 중에 유난히 튀는 관중이 있다면 한 무리의 여자애들이었는데, 그들이 모두 오이카와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이와이즈미는 멋쩍은 헛기침을 해야 했다. 얼굴이 멀끔해서 인기가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쯤 되면 동네 아이돌 수준이었다. 오이카와는 종종 고개를 올려 여자애들에게 손을 흔들었는데, 그때마다 체육관에 환호가 터졌다. 1학년짜리 그렇게 까불면 혼이 날 법도 한데, 선배들이 와서 머리를 쥐어박는 것 빼고는 별다른 일이 없었다.
다음으로 당황스러웠던 것은, 그의 포지션이 세터라는 것이었다. 각 팀에 하나밖에 없는 포지션의 주전을 1학년짜리가 맡고 있는 점이 놀라웠다. 이와이즈미는 좌우에 아무도 없는 자리를 찾아 앉아서는 시합을 지켜보았다. 뭘 모르는 이와이즈미가 보아도 오이카와는 코트 위를 매끄럽게 오다녔다. 토스는 정확했고, 스파이크는 늘 시원하게 뻗었다. 블로킹에 가로막혀도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분해하면서도 곧바로 침착한 얼굴로 다음 토스를 준비했다. 그가 1학년이고 주변의 사람들이 그보다 선배라는 것은 점차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오이카와는 때로는 그들의 맨 꼭대기에 서서 지휘를 하다가도 필요하면 가장 밑바닥으로 내려와 팀의 발판이 되었다. 스파이커들의 어깨가 호쾌하게 돌아가는 것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2세트 완승으로 오이카와의 팀이 승리를 거머쥐었다. 시작이 좋았다.
오이카와의 팀이 나오는 길목에 다른 가족들도 서있었다. 형제도 없어 이런 경험이 없었던 이와이즈미는 어색한 기분이 들어 자꾸만 시선을 멀리 옮겨다놓았다. 그러는 사이 길목에는 여자애들 몇이 모여 오이카와를 기다렸다. 마침내 오이카와의 팀이 밖으로 나왔을 때, 다른 선수들은 각자 가족들에게 갔는데, 오이카와만 입구 옆에 붙잡혀 여자애들에게 선물 공세를 받았다. 함께 사진도 찍는지 웃으며 브이를 그리기도 했다. 그대로 천년만년을 있을 것 같더니 사진 몇 장을 찍고는 두 손을 흔들며 여자애들 사이를 빠져나왔다. 안타까운 탄성이 터지는데도 뒤도 안돌아보고 주변을 돌아본다. 누구를 찾는지가 뻔해서, “오이카와.”하고 불러주었더니 고개를 바로 이쪽으로 돌렸다.
“이와쨩!”
주변에서 자기를 얼마나 쳐다보는지는 신경도 쓰지 않는지, 냉큼 달려와 이와이즈미의 앞에 선다. 이와이즈미는 축하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꽃다발을 내밀었다. 혹시 오이카와가 지면 꽃다발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모두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오이카와는 꽃다발을 곧장 받지 않고 입술을 벌린 채 감격했다. 오이카와는 가방을 뒤적거리며 자기 핸드폰을 꺼내 이와이즈미를 찍으려고 했다. 이와이즈미가 놀라 핸드폰의 카메라 부분을 가리니 눈이 촉촉한 강아지처럼 애처로운 얼굴을 했다.
“이와쨩이 처음으로 주는 꽃다발 찍고 싶은데…….”
“네가 들면 내가 찍어줄게.”
“그럼 누가 주는지 안 나오잖아요!”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가 싶다. 오이카와는 고민하다가 그럼 같이 찍자고 했다. 그는 선배 중 한 사람에게 달려가 그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와이즈미는 여전히 사진 찍는 것이 꺼려졌지만 오이카와가 방방 뛰는 것을 보니 차마 그것마저 안 된다고 할 수가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어깨에 손을 올린 채 나란히 섰다. 사람 둘과 꽃다발 하나가 부산스러운 풍경을 뒤로한 채 핸드폰 안에 찍혔다. 오이카와는 꾸벅 인사를 하고 사진을 이와이즈미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뭐에요. 이와쨩 엄청 떨떠름한 얼굴이야.”
“떨떠름해서 그렇지.”
“그래요? 난 좋은데.”
오이카와는 꽃다발을 두 팔로 끌어안은 채 풍성한 꽃 위에 코를 묻었다. 안개꽃이 그의 얼굴을 간질인 까닭인지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한참을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웃는 모습이 넋 놓고 보기에 좋았다. 사랑스럽다는 말이 절로 떠올랐다. 그를 징그럽다 말하며 버린 사람들이 조금도 이해되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잘 정돈된 머리카락이 손가락 사이로 흐트러졌다. 혹시 화를 낼까 싶었는데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수고했어.”
이와이즈미는 떠오른 말들은 꺼내지 않고 모두 삼켰다. 대신 다음에도 주말에 시합이 있으면 보러 오겠다는 약속을 했고, 오이카와는 큰 선물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기뻐했다. 주장으로 보이는 아이가 집합을 외치고, 오이카와는 꽃다발을 이와이즈미에게 맡긴 채 곧장 그 자리로 뛰어갔다. 오늘 시합이 끝났건만, 다음 시합을 대비한 연습 계획을 줄줄이 읊는다. 이제 겨우 예선이 끝난 것이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옆모습만 보이는 오이카와는 주장의 말에 따라 네! 하고 곧장 답을 했다. 저러고 있는 것을 보니 영락없이 체육계 고등학생이었다. 이와이즈미는 꽃다발을 든 채로 오늘의 저녁에 대해서 생각했다. 일요일다운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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