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워드 주의 : 키잡, 모브여캐, 유산, 고아.
요새 안써진다는 글이 이거... 上 붙여놓기는 했는데 더 쓸지 모르겠다
마치 흑백으로 이루어진 세계에 발을 들인 기분이다. 남자들은 모두 새카만 정장을 입었으며 여자들 또한 검은 치마 혹은 검은 바지를 입고 그 위에 또 검은 웃옷을 걸쳤다. 드물게 다른 색이 보이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흑백의 나열 속에 숨어버린다. 장례식이란 그런 곳이다. 웃음소리가 틈틈이 들리는 데도 불구하고 등줄기가 서늘한 곳. 이와이즈미 또한 검은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그는 평소보다 넥타이를 목에 죄게 매고 있었으나 불편한 이유를 눈치 채지 못했다. 그저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와이즈미는 담배 한 개비조차 갖고 있지 않았다. 몇 달 전에 기적처럼 담배를 끊은 까닭이었다. 영정 사진 속의 여자는 그걸 지켜보며 “독한 면이 있네.”라며 깔깔 웃었다. 그걸 떠올리자 더욱 목이 탔다. 갑자기 금단증상이 밀려오는 듯 속이 울렁거린다. 이와이즈미는 담배를 사러가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변의 시선이 따끔거렸으나 손날로 어깨를 털어내며 덤덤한 얼굴을 했다.
장례식장 내부에서 매점을 찾아다녔다. 얼기설기 이어진 복도에는 곡소리와 웃음소리가 섞여 들렸다. 그것에 짙은 위화감을 느낄 무렵이었다.
“쟤는 엄마가 죽었는데 울지도 않아.”
“징그러운 놈.”
이와이즈미는 시선을 돌려 그 식장의 이름을 확인했다. 그건 아주 무의식적인 행동이었으나 머릿속에 분명하게 박혔다. 이와이즈미는 그대로 복도를 빠져나와 매점에서 담배를 샀다. 워낙 오랜만이기 때문인지 담배의 이름을 뱉을 때 혀가 입안에서 머뭇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복도에서 들었던 타인의 비극이 점차 의식으로 새어들었다. 엄마가 죽었다는 그 애는 몇 살일까? 그 애를 험담하던 사람들과는 무슨 사이일까? 어떤 아이기에 징그럽다는 소리마저 들을까? 이와이즈미의 머릿속에 일곱 살 먹은 어린애가 새카만 죽은 눈을 하고 있는 것이 그려졌다. 그 편이 가장 비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인의 장례식장에 몰래 들어섰을 때 영정 사진 앞에 서있는 것은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소년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천천히 눈을 굴려 주변을 둘러보았으나 아버지처럼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소년의 얼굴은 앳되었다. 하얗고 반듯하게 생겨서 더 그렇게 느껴졌다. 그런 것에 비해 키가 커서 어려보이는 고등학생인지, 키가 큰 중학생인지 분간이 가지를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소년을 응시했다. 밝은 편인 갈색 눈은 유리구슬처럼 생기가 없었다. 그저 빛을 받을 때마다 더 옅은 색이 도드라졌을 뿐이다. 그는 두 손을 공손하게 모은 채 서있었는데, 그에게 맞는 정장을 구하지 못했는지 어깨선이 축 늘어져 있었다. 사람들이 그 소년을 두고 징그럽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소년의 얼굴은 아주 하얬다. 한 번도 운 적이 없는 사람처럼 눈가가 굳어 있었다. 사람들이 때때로 그에게 말을 걸면 답 없이 허리를 꾸벅였다. 무시하는 일은 없었지만 답해주지도 않았다.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소년이 고개를 돌렸다. 아무렇게나 돌린 시선이 아니었다. 정확히 이와이즈미 쪽을 향해서 돌아선 것이었다. 이와이즈미는 발이 묶인 사람처럼 그 자리에 섰다.
누군가 등 뒤에서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이제 저 애는 누가……”
“유산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저들끼리 나누는 대화였고, 목소리는 분명 작았다. 그러나 이와이즈미에게, 그리고 저 소년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는 아니었다. 소년은 눈을 길게 감았다가 아주 천천히 떴다. 촘촘한 속눈썹이 안구를 짓누르는 것처럼 힘겨워 보였다. 이와이즈미는 한순간이지만 구두밑창을 질질 끌었다.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세상에는 모르는 게 나은 일들이 있다. 이를테면 담배의 존재가 그러하다. 이와이즈미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오던 도중 라이터를 사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숨이 더욱 조였다. 누군가 이와이즈미에게 괜찮냐고 물었지만 답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신음조차 나오지 않는 입술을 벌린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영정 사진 속 여자의 이름은 하루카였다. 사실 처음에는 그 이름이 아니었다. 하루카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가 없었고, 그래서 자기 이름을 소중하게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남들은 못난 이름에도 정 붙이고 산다는데 하루카는 그런 법이 없었다. 그녀는 자주 이름을 바꿨는데, 호적에 등록될 새도 없이 빠르게 사라지는 이름마저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그때마다 그녀의 이름을 꼬박꼬박 바꿔 불렀다. 하루카도 자신의 몇 번째 이름이 무엇인지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와이즈미는 종종 기억해냈다. 토모코 다음에 스텔라였어. 그 이름은 정말 낯부끄러웠는데. 그렇게 말하면 하루카는 드물게 함박웃음을 지었다. 하루카가 자신의 이름을 하나로 정한 것은 아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기는 너만큼 날 사랑해주지 않을 거고, 내 이름도 꼬박꼬박 외워주지 않을 테니까.”라는 이유를 댔다. 그건 하루카가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사랑한다는 증거였고, 정착의 선언이었다. 그 무렵 이와이즈미는 담배를 끊었다. 담배가 피우고 싶어 몸이 꼬일 때면 묘하게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견딜 수 있었다. 이와이즈미의 명의로 된 집에는 창고로 사용하던 방이 하나 있었는데, 두 사람은 틈이 나면 그 작은 방에 들어가 벽지를 고민했다. 이와이즈미는 딸이면 분홍색, 아들이면 파란색으로 해야 한다고 했지만 하루카는 중요한 것은 무늬라고 주장했다. 방에는 틈만 나면 아기용품이 늘었고, 뒤늦게 결혼식 준비도 시작되었다.
회상하건데, 하루카는 밝은 사람이 아니었다. 빵빵한 풍선에 바늘 끝을 가져다댄 것처럼 늘 예민하고 아슬아슬했다. 어쩌면 아이 하나를 품고 그 위에 행복을 쌓기에는 무리였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하루카의 탓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루카의 탓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와이즈미에게 혹시 가짜 임신이 아니었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연고 없는 여자가 안정을 위해 무슨 짓인들 못하겠냐고 했다. 그 날 이와이즈미는 생전 처음 경찰서에 갔다. 연락을 받고 온 하루카는 임신한 사람처럼 배를 움켜쥐고 있었다. 잘 걷다가도 자꾸만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렇게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흡사 태아와 같아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소름이 돋는 자신에게 소름이 돋았다. 하루카는 자꾸만 빈 방에 들어갔지만 이와이즈미는 그 방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하루카에게 들어가지 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보일러는 항상 꺼두었다. 그럼에도 하루카는 종종 그 방에서 잠을 잤다. 하루 종일 그 방에서 나오지 않는 날도 있었다. 이튿날이 되어서야 이와이즈미는 그 방의 문을 열고 하루카를 꺼내왔다. 그때마다 하루카는 눈을 내리깐 채로 잠이 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방이 추워서 그래. 침실에서 따뜻하게 자자.”
“아니야. 네 방에서도 잠이 안와.”
언젠가부터 하루카는 침실을 ‘네 방’이라고 했다. 모든 물건을 이와이즈미의 것이라고 했다. 오로지 차가운 방에 놓인 아기용품만이 그녀의 것이었다. 기이한 정착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점점 ‘하루카의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출근을 하고 돌아오면 집안이 온통 조용했다. 늘 헛돌아서 잔소리를 해야 했던 TV마저 꺼져있었다. 이와이즈미는 2인분의 밥을 하고, 혼자 1인분을 먹었다. 밥을 그대로 두고 방으로 들어가면 부엌에서 인기척이 들리는 때도 있었고, 들리지 않는 때도 있었다. 들리지 않는 때가 더 많았다.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퇴근을 한 이와이즈미는 밥을 차렸다. 자신과 하루카의 몫이었다.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고 자리에 앉아 컵을 만지작거렸다. 문득, 하루카의 이름을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그러했듯이 목욕물을 부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찬물이 목울대를 넘어가며 꿀꺽꿀꺽 소리를 냈다. 자기 몫의 설거지를 하고, 하루카 몫의 식사를 남겨놓은 채 그 위에 천을 덮어놓았다. 그대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려던 이와이즈미는 발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 지금은 이유가 생각나지 않는다. 볼일을 보려던 것일 수도 있고, 이를 닦으려던 것일 수도 있고, 샤워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상할 만큼 꽉 닫혀있는 화장실 문에서 위화감을 느낀 채 문고리를 돌렸을 때, 이와이즈미의 시야는 붉게 물들었다.
그때 처음으로 모르는 편이 나은 일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어차피 만나지 못할 아기의 존재가 그렇다.
날이 저물어가는 무렵 라이터를 샀다. 인사를 하고 떠나는 상객이 있는가하면 이곳에서 잠을 자려고 마음먹고 찾아온 상객도 있었다. 하루카는 그녀가 유쾌하지 않은 만큼 주변에 유쾌한 사람들을 많이 두고 있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 찾아와 이와이즈미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고, 척 보아도 그들에게 거금일 금액을 내놓으며 술판을 벌였다. 하루카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면, 그들 사이에 끼어 턱을 괸 채 입꼬리를 슬쩍 올리고 있을 것이다. 이와이즈미는 그들을 등진 채 밖으로 나왔다. 장례식장 밖으로 차 여러 대가 주차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을 향해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랜만의 씁쓸한 맛이 혀를 눅눅하게 했다. 연기를 뱉어내며 그 끝을 응시했다. 선명하던 것이 금방 흩어져 정처를 알 수가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그것을 쫓지 않았다. 우연히 시선 끝에 걸린 그림자 하나가 더 신경 쓰인 탓이다. 어둠 속에 둥근 그림자는 척 보기에도 사람이었으나 여자인지 남자인지, 어린아이인지 노인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것을 살폈다. 마침 자동차 하나가 시동을 걸어 헤드라이트를 깜박였다. 그것이 그림자에 슬며시 닿았다가 사라졌다. 이와이즈미는 입술을 가느다랗게 벌렸다. 담배연기가 원래 자기 길 찾아가는 양 빠져나갔다.
아까 보았던 그 아이였다. 어느 불륜 드라마에서 나오는 아이처럼 이도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그 애다. 분명 남의 일인데 목구멍이 턱하니 막혔다. 그건 어쩌면 저 아이의 둥근 등과 목뼈가 눈에 익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루카는 틈이 나면 저렇게 자신의 몸을 둥그렇게 말고 새까만 방안에 틀어박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마치 그 자신이 태아가 되려는 것처럼, 태초를 향할 듯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것처럼. 이와이즈미는 뒷걸음질을 치며 몸을 돌렸다. 필터에 닿도록 타들어가는 담배의 재와 불을 떨어내고 장례식장으로 한 걸음을 디뎠다. 손끝이 추위에 떨듯 파르르 떨렸다. 긴 한숨을 쉬고 다시 몸을 돌렸다. 소년은 여전히 길쭉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다. 이와이즈미는 그의 앞에 다가가 무릎을 굽혔다. 소년이 고개를 들기 전 찰나의 순간에 그의 뒷목에 손을 얹었다.
“너 갈 데 없지.”
아이가 고개를 들었다. 손가락 마디 아래 목뼈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가까이 마주한 눈은 의외로 동그랬다. 그 안에 들어있는 그보다 더 둥근 갈색 눈이 투명하게 이와이즈미를 비췄다. 아이의 눈에는 경계심이 없었다.
“나랑 살래?”
“누구세요?”
당연한 물음이었음에도 위화감이 느껴졌다. 신원을 밝히기보다는 자기소개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같은 행동이었으나 달랐다. 이와이즈미는 아이의 목에서 손을 미끄러뜨려 어깨를 잡았다. 생각보다 단단했다.
“이와이즈미 하지메. 집에 방이 하나 비어있어.”
방은 본래부터 비어있었다. 아주 잠깐 여자인지 태아인지 모를 이가 잠들었을 뿐이다. 그 방은 한 번도 온전한 주인을 얻은 적이 없다.
“조금 춥지만 깨끗해.”
이와이즈미는 말을 고르기 위해 잠시 입을 다물었다. 또 다시 목이 탔다. 갈증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몸 깊숙한 곳에 틀어박혔다. 물을 마셔도 담배를 피워도 나올 생각을 않았다. 벽지를 고르게 해주겠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을 열면 입술이 찢어질 듯 했다. 그 순간 소년이 손을 뻗었다. 어두운 와중에도 손이 참 희다고 생각했다. 소년의 손은 이와이즈미의 넥타이에 닿았다. 그는 꽉 죄어진 넥타이에 아주 조금, 정말 자그마한 틈을 만들었다.
그 순간 이와이즈미를 끈질기게 괴롭히던 갈증이 사라졌다. 이상한 일이었다.
주변의 만류는 당연했다. 어디서 솟은 지 모를 여자와 결혼을 하려고 들더니 이번에는 친척도 있는 아이를 데려다가 키운다고 펄펄 뛰었다. 이와이즈미는 그 말을 고스란히 들으면서도 핸드폰을 확인하더니 시간이 늦어 집에 가봐야겠다고 했다. 동시에 뒷덜미를 잡혀 온갖 진심어린 충고를 들었다. 이와이즈미는 또 묵묵히 말을 들었다. 틈날 때면 친구의 술잔에 술을 채워줬다. 너 생긴 건 안 그런데 왜 그렇게 사람이 착해, 네가 자원봉사자야? 인생을 자원하면 어떡해.
“나 생긴 게 어떤데?”
“존나 답답하게 생겼지. 존나 커다랗고 시커먼 고양이처럼 생겼어.”
친구는 슬슬 맛이 가고 있었다. 얼굴은 빨갛고 말할 때마다 양 손을 크게 벌렸다. 특히 ‘커다랗고’라고 말할 때는 양 팔을 찢을 기세였다. 이와이즈미는 헛웃음을 치며 다시 친구의 술잔을 채웠다. 그리고는 각 집에 전화를 걸고 택시에 사람을 하나하나 실었다. 그러고 나니 벌써 시간이 네 시가 넘어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약간 어질한 걸음으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건물 앞에서 시간을 확인하니 다섯 시가 살짝 넘었다. 그 애가 일어날 시간이었다. 이와이즈미는 도어락을 풀고 집안으로 들어갔다.
예상대로 아이의 방문 틈으로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신발을 대충 벗고 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안에서 발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편한 운동복을 입은 채 한 손에는 점퍼를 들고 있다. 아이는 나가기 전에 늘 점퍼를 입을지 말지 고민했다. 입고가면 덥고, 놓고가면 춥다고 했다.
“토요일인데 나가냐?”
“안되나요?”
“아니, 신기해서 그러지. 살면서 너처럼 운동 열심히 하는 애는 처음 본다.”
그러자 뭐가 웃긴지 실실 웃었다. 웃음에 힘이 없어 뭐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아이가 이와이즈미의 집에서 살게 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다. 토요일에도 운동을 나가는지 나가지 않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짧은 기간이었다. 그 말은 장례식을 치룬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했다. 이와이즈미는 “조심해서 다녀와라.”라고 말하고는 부엌으로 향했다. 술을 많이 먹어서인지 목이 칼칼했다.
아이의 이름은 오이카와 토오루였다. 자기 얼굴 따라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번도 이름으로 불러본 적은 없다. 늘 너, 아니면 오이카와였다. 반면에 오이카와는 스스럼이 없었다. 이와이즈미의 집으로 가던 도중에 “뭐라고 불러야 해요?”라고 물어서 이와이즈미를 곤혹스럽게 만들더니 “이와쨩?”하고 곧장 되물었다. 이와이즈미는 그건 좀 아니지 않나 생각했으나 그렇다고 이 나이에 아저씨라고 불리고 싶은 것도 아니었거니와, ‘이와이즈미 씨’ 같은 호칭은 고등학교 1학년짜리 어린애에게 어울리지 않아 그러자고 했다.
처음 오이카와를 데리고 집에 왔을 때, 건물 앞에서 이웃을 만났다. 그는 이와이즈미에게 정겹게 인사를 하며 오이카와가 누구인지 물었는데, 이와이즈미가 머뭇거리는 사이 오이카와는 “사촌이에요. 학교가 멀어서 신세지기로 했어요.”라고 답하며 꾸벅 인사를 했다. (오이카와의 말은 당연히 거짓말이다. 그는 굳이 전학을 갈 필요는 없었지만 전보다 더 멀리 학교를 다녀야했다.) 그때 이미 보통 애가 아니라는 생각은 했다. 그 이후로 지켜본 오이카와는 평범하기보다는 유별난 애에 가까웠다. 친구들 중 누구에게도 어머니의 장례식을 알리지 않았는지 오는 연락들이 죄다 웃음 섞인 농담조였다. 개중에는 까르륵 거리는 여자애들이 많았는데, 오이카와는 그것을 능청스럽게 상대하며 에둘러 거절할 줄을 알았다. 그것까지만 보고서도 벙이 쪄서 “학교에서 인기가 많구나?”라고 물었는데, 오이카와는 뒷목을 쥐고 웃으며 답이 없었다. 그렇게 여자애들을 거절하고 나서 무엇을 하나하면 집에서 스트레칭을 하거나 이와이즈미의 컴퓨터를 빌려 배구영상을 보았다. 기상은 새벽 다섯 시로, 출근하는 이와이즈미보다 일렀고 이와이즈미가 일어났을 때는 이미 주변 공원으로 나가있었다. 그런 주제에 이와이즈미가 먹을 아침을 대충 차려놓고 나가기까지 했다. 그만큼 일찍 자는가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오는 날은 고작 월요일 하루뿐으로, 보통 해가 저물어야 학교 유니폼을 입고 귀가했다. 돌아와서는 또 이와이즈미의 컴퓨터를 빌려 배구 영상을 보았다. 그의 하루는 온통 배구로 가득 차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그의 방으로 컴퓨터를 옮겨주면서 그가 배구에 열중하는 것이 부모의 상실 때문인지 본래 그런 것인지 고민했다. 답은 시간이 알려줄 것이기 때문에 이와이즈미 혼자 내릴 수는 없었다.
이와이즈미는 물을 따라 마시며 눈으로는 현관을 살폈다. 둥근 뒤통수가 무릎 아래 코를 박고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있었다.
“위에 뭐라도 걸치고 가지?”
“밖에 많이 추워요?”
고개를 돌려 묻는 눈이 동그랗다. 아무래도 얼굴은 정말 타고난 것 같다.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둘 다 미인상이리라 짐작할 만큼이었다.
“그보다도 땀 식으면 춥잖아.”
“아, 저 감기 잘 안 걸려요.”
“감기 안 걸리면 냉장고에 가둬놔도 되냐?”
“네에?”
오이카와는 기겁한 얼굴로 어깨를 뒤로 빼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이와이즈미의 집에 와서 내는 첫 웃음소리였다. 어려서 그런지 소리가 예뻤다. 그는 운동화 끈을 다 맸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치 땅바닥에 앉아있었던 것처럼 엉덩이를 탁탁 털어내더니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인사를 했다. 이와이즈미는 물을 든 채 짧게 답해주었다. 계단을 내리는 오이카와의 발소리를 듣다가 베란다 쪽으로 걸어가 밖을 내다보았다. 공원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이미 일정한 보폭으로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그의 머리 위로 땅거미가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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