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퀘 주신 키닌님 감사해용ㅇ//ㅇ
이번에도 졸업식 단추 이야기
시야 한 가득 꽃다발이 들어찼다. 스가와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것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꽃다발이 조금 물러난다. 그 위로 카게야마의 얼굴이 삐죽 보였다. 안개꽃 사이사이로 보이는 잘생긴 얼굴이 아주 흡족했다. 카게야마는 민망한 듯이 눈을 굴리다가 “졸업 축하드려요!”하고 조금 큰 소리로 말했다. 주변에서 가던 걸음을 늦추며 한 번씩 돌아보았지만 스가와라에게는 카게야마의 입을 막을 손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카게야마의 꽃다발을 받아줄 손 또한 없었다. 그의 품에는 이미 두 개의 큼직한 꽃다발이 안겨있었다. 스가와라는 고민하다가 카게야마의 꽃다발을 온몸으로 받았다. 두 개의 꽃다발 사이에 카게야마 몫의 꽃다발이 엉거주춤하게 올라갔다. 그러자 스가와라의 몸과 얼굴이 전부 가려졌다.
“꽃다발 괜히 사왔나 봐요.”
“그럴 리가! 정말 고마워.”
물론 마음 가득 고마웠으나 꽃다발 세 개를 한 번에 들기는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아무렇게나 들썩들썩 던졌다 놓아도 되는 물건이면 괜찮겠는데 꽃이라 망가질까 여간 걱정이 아니었다. 결국 스가와라는 부모님에게로 달려가 꽃다발을 두 개 맡기고 하나만 들었다. 스가와라가 챙긴 꽃다발은 카게야마가 방금 선물한 것이었는데, 단순한 우연이겠지만 카게야마는 그것이 참 설렜다. 스가와라는 한 팔로 꽃다발을 끌어안고 카게야마와 나란히 서서 의미 없는 걸음을 했다. 오늘은 스가와라가 교복을 입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마지막 날이었다. 이제는 교복을 입으면 유난스럽다는 소리를 들어야할 것이다. 그런 날이니만큼 카게야마와 함께 학교를 걷고 싶었다. 스가와라는 졸업식에 친척들이 찾아와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라며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또 조금 이따가 가족끼리 식사를 하기로 했는데 평소보다 좋은 곳을 갈 것 같아서 기대가 된다는 이야기도 했다. 카게야마는 그 이야기를 가만가만 들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끔씩 서로에게 건네는 물음은 또 다른 이야기를 낳았다.
스가와라의 핸드폰과 카게야마의 핸드폰이 거의 동시에 울었다. 스가와라의 것에는 아사히가, 카게야마의 것에는 히나타가 연락을 넣은 것이었다. 두 사람은 핸드폰을 맞대고 웃음을 터뜨렸다.
“애들 같이 있나봐.”
“아까 사진 찍는다고 말하기는 했어요.”
“그럼, 당연히 찍어야지. 그래도 다 같이 나와서 선배들 축하해주고 기특하다.”
스가와라는 한 손을 들어 카게야마의 머리를 헤집었다. 카게야마는 뻘쭘한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얌전히 있었으나 귓바퀴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감출 수는 없었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빨간 귀에 손끝을 가져다댔다. 그러자 카게야마가 몸을 파르르 떨며 고개를 들었다. 마주친 눈이 얼마나 동그랗고 커다랗던지 나쁜 짓이라도 저지른 기분이다. 스가와라는 이번에는 혼자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을 겨우 그친 후에는 헛기침을 하며 자기 마이를 만지작거렸다.
“카게야마, 내 단추 안 필요해?”
“예?”
“왜 달라는 소리를 안 해?”
스가와라는 자기 두 번째 단추를 만지며 물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눈을 수없이 깜박거리며 이마에 ‘이게 무슨 소리지?’라고 써다 붙였다. 스가와라는 고개를 기울이며 카게야마가 눈 깜박이는 속도에 맞춰 자기도 눈을 깜박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기에 저렇게 눈을 빨리 깜박이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카게야마의 생각이 스가와라에게 들릴 리 없다. 스가와라는 꽃다발 위치를 반대쪽 팔로 옮기며 “필요 없어?”라고 다시금 물었다. 그러자 카게야마는 아주 조심스러운 얼굴로 답했다.
“저 단추…… 많은데…….”
그러니 재차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다. 스가와라는 마치 전자레인지 속의 팝콘처럼 허리를 굽혀 빵빵 터졌다. 주변 사람들은 이번에는 스가와라를 힐끗힐끗 보고 지나갔다. 그 앞에 서있는 카게야마는 이유도 모르고 얼굴만 빨갰다. 스가와라는 웃고 또 웃다가 넘어질 뻔하는 바람에 카게야마의 팔을 붙잡고 몸을 지탱하고 또 웃었다.
“스가와라 씨, 제가 뭐 잘못 말했나요?”
“아니, 아니, 그렇지. 집에 단추 많으면 단추 필요 없지.”
한참 후에 웃음을 겨우 그친 스가와라에게 물으니 스가와라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또 아하하 웃으며 답했다. 너무 웃어 입이 저린지 주먹으로 입가를 문지르기도 했다. 그는 간신히 웃음을 후 그치고 바로 섰다.
“내 두 번째 단추 가져가.”
“예?”
“가지기 싫어?”
“아, 아뇨.”
스가와라는 “그럼 가져가.”라며 카게야마에게 단추를 끊어가라고 재촉했다. 카게야마는 망설이다가 스가와라의 교복 두 번째 단추에 손을 대고 요령껏 실을 끊었다. 교복을 오래 아껴 입은 탓인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스가와라는 손바닥 위에 단추를 올리고 멀뚱히 서있는 카게야마의 손을 예쁘게 주먹 쥐어주며 그의 코트 안에 넣어주었다.
“카게야마, 이건 단추가 부족할까봐 주는 게 아니야.”
“그러면요?”
“집에 가서 찾아봐. 찾아보고 나한테 연락 해.”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어깨를 두드리다가 놀라 숨을 삼켰다. 생각해보니 둘 다 부원의 전화를 무시한 것이다. 스가와라는 카게야마의 팔을 붙잡고 걸음을 조금 서둘렀다. 때맞춰 두 번째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스가와라는 냉큼 전화를 받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연신 뱉었고 카게야마는 뒤따르며 자기 코트 주머니에 얌전히 담겨있는 단추를 만지작거렸다. 카게야마는 그 흔한 속설도, 두 번째 단추의 의미도 몰랐지만 스가와라의 단추를 받은 사람이 자기뿐이라는 것은 알았다.
'하이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와오이] 낙서, 짝사랑하는 오이카와 (4) | 2015.01.28 |
---|---|
[카게스가] 약속 (0) | 2015.01.16 |
[이와오이] 두 사람 (0) | 2015.01.13 |
[이와오이] 단추 (4) | 2015.01.13 |
[이와오이] 연애 (0) | 2014.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