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안에서 꽃다발이 한가득 바스락거렸다. 가족들이 축하한다며 가져다준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이와이즈미는 몇 번이나 꽃다발을 거꾸로 들었다. 그때마다 주변에서 꽃이 망가진다며 제대로 들고 있으라고 해서 고쳐들기를 반복했다. 반 친구들이 다가와 함께 사진을 찍고, “오이카와는?”하고 물었다. 이와이즈미는 어깨를 으쓱이며 모른 체를 하다가 “학교 뒤에 여자애들이랑 같이 있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모두가 소리 내어 웃으며 수긍했다. 마지막까지도 인기가 많다며 참 그다운 졸업식이라는 것이다. 이와이즈미 역시도 웃음을 터뜨렸다.
오이카와가 연락해온 것은 몇 분 후로 이와이즈미가 다른 친구들과 얼추 사진을 찍은 후였다. 가족끼리 단란하게 찍은 것도 몇 장이나 있었다. 이와이즈미가 아직 사진을 찍지 않은 사람은 오이카와뿐이었다. 뭐, 졸업식 날 울먹거리는 여자애들한테 둘러싸여있을 것은 예상한 바이지만 그 녀석과도 사진 한 번은 찍어야할 텐데……. 안 그래도 오이카와 생각을 했는데 아주 기다렸다는 듯 핸드폰이 울었다. 귀신같은 놈이라고 생각하며 전화를 받으니 “부실로 와.”하는 목소리가 아주 자그맣게 들렸다. 못들은 것은 아니었으나 갑작스러워서 “뭐?”하고 되묻자 자기 혼자 씩씩거리면서 “몰래 부실로 와!”하고 목소리를 아주 조금 크게 했다. 여기서 굳이 ‘혼자?’라고 주변에 들리도록 말하는 멍청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와이즈미는 태연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가족에게는 잠시 친구와 인사하고 오겠다고 말하고 부실로 향했다.
북적한 강당과 달리 부실로 향하는 길은 한적했다. 공간이 분리된 것처럼 강당 쪽만 시끌시끌하고 이쪽은 웃음소리 하나 없이 조용했다. 이와이즈미는 손을 덜렁거리다가 꽃다발을 들고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맡겨놓고 올걸. 뒤늦게 후회가 되었으나 이것 때문에 되돌아가는 것이 더 귀찮아 마저 걸음을 놀렸다. 당연히 잠겨있어야 하는 부실의 문고리를 쥐었더니 오이카와가 열어두었는지 문이 밀렸다. 안에서 의자에 앉아있던 오이카와가 고개를 들었다. 핸드폰도 보지 않고 기다렸는지 두 손 모두 주머니 속에 쏙 들어가 있었다.
“여기가 밖보다 더 추워.”
오이카와가 처음 꺼낸 말은 그것이었다. 정말 그랬다.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밖보다 온기 하나 없는 이곳에 더 싸늘했다. 오이카와는 어깨를 부르르 떨며 투정을 부렸는데, 그런 그의 귓불이 빨갛게 물들어서 엄살로 느껴지질 않았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앞에 다가가 서서 “감기 걸리겠다.”라고 말했다. 오이카와는 “괜찮아, 괜찮아.”하며 태연하게 굴었다. 왜 불렀느냐고 묻기도 전에 오이카와가 손을 뻗었다. 꽃다발을 쥐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의 손끝은 이와이즈미의 코트 속으로 쏙 들어가 마이 단추를 잡았다. 뭐 하냐는 듯 쳐다보니 아랫입술을 깨물며 얄밉게 웃어 보인다.
“이거, 나 줘.”
그제서야 오이카와가 쥐고 있는 단추가 두 번째 단추인 것을 알았다. 이와이즈미는 시선을 내려 오이카와의 마이 단추를 살폈다. 전부 빼앗겼는지 마이에 실밥이 삐죽삐죽 튀어나와있었다. 무슨 상황이었는지는 알만했으나 이와이즈미는 끄떡없다는 듯 “내가 왜?”하고 말했다. 그러자 오이카와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쉼 없이 깜박였다.
“나 안줄 거야? 두 번째 단추!”
“네 건 어디 버리고 왜 나한테만 달래.”
“아?”
‘아?’는 뭐가 ‘아?’야. 바보처럼 구는 오이카와에게 한소리 하려는데 다른 손을 주머니에서 꺼내 이와이즈미 앞에 내밀었다. 마치 꽃의 개화를 보여주는 것처럼 아주 신중하게 주먹을 펼친다. 얼굴은 꽝꽝 얼어있는 주제에 어찌나 신나보이던지 찍어놓고 오래도록 보관해두고 싶을 정도였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얼굴과 자기 눈앞에서 펼쳐지는 희고 빨간 손바닥을 번갈아보았다. 그러다가 손가락 틈새로 단추 한 알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오로지 오이카와 손바닥 위만 응시했다.
“자, 내 두 번째 단추.”
이와이즈미는 단추를 받기 전에 두 번째 단추를 힘주어 뜯어냈다. 실이 손가락에 걸려 아릿했지만 금방 뜯어낼 수 있었다. 자기 단추를 먼저 오이카와의 손에 올려놓은 후에 단추를 받았다. 이와이즈미는 자신의 손안에 들어온 오이카와의 두 번째 단추를 가만히 보았다. 짧은 실밥 하나가 아직도 단추 구멍에 꿰여져 있었다. 어째서인지 그것을 빼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대로, 오이카와 건네준 그대로 자신의 방 서랍 한 자리에 고이 넣어주고 싶었다. 어느 날 문득 서랍을 열어보았을 때 시간을 고이 녹여놓은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이와쨩, 내 단추 잃어버리면 안 돼.”
“안 잃어버려.”
“진짜?”
“잃어버리겠냐. 여기 진짜 추워. 나가자. 사진도 찍고.”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이며 단추를 자기 마이 안주머니에 넣었다. 이와이즈미 역시 그렇게 했다. 오이카와는 부실을 나선 후에야 “꽃다발 안 어울린다.”라며 웃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으나 괜히 등짝을 때렸다. 코트 때문인지 바람 빠지는 소리만 났다. 강당 쪽에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의 가족은 서로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오이카와와 이와이즈미도 정신없이 서로의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다가 얼결에 떠밀려 둘이 나란히 섰다. 오이카와가 이와이즈미에게 팔짱을 끼며 바짝 붙어서 브이를 그리고 이와이즈미도 똑같이 브이를 그렸다. 사진기가 찰칵하고 울며 그 날의 마지막 사진을 찍었다. 이와이즈미의 졸업식 사진 중 두 번째 단추가 없는 것은 그 사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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