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고가 완전히 끝났다. 미야기 현의 어느 학교도 우승자가 되지 못했다. 저들끼리 치고 박고 다투었지만 결국 승리의 여신은 누구에게도 웃어주지 않은 셈이다. 오이카와는 넋을 놓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눈앞에 손바닥을 펼쳐놓고 몇 개의 학교 이름을 중얼거리며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일도 잦았다. 첫 번째로 부르는 학교 이름은 매번 아오바죠사이였고, 두 번째는 매번 달랐다. 어쨌든 카라스노거나 시라토리자와였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발밑에서 패배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중학교 3학년 때보다 더 굵고 어두운 빛깔이었다. 그래서 오이카와가 그를 찾아왔을 때 크게 놀라지 않았다.
“같이 죽어버리자.”
겨울이었다. 졸업이 다가오고 있었고, 배구부는 더 이상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죽도록 노력했지만 결국 전국에 가지 못한 사례가 되어 그들의 호승심을 높여줄 뿐이었다. 그 속에서 오이카와는 안으로 들어가지도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고여 있었다. 고인 것은 언제나 새까맣게 썩어 들어간다. 손끝이 얼어붙는 추위였음에도 오이카와는 코트 하나만 덜렁 걸치고 있었다. 신발은 아무거나 신었는지 배구화였고, 허연 목은 목도리도 없이 드러나 있었다. 장갑을 끼지 않은 맨손이 얼어붙어 새빨갛게 되어있는데도 주머니에 넣지도 않았다. 오이카와는 추위도 느끼지 못하는 듯 이와이즈미의 답만 기다리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긴 숨을 한 번 뱉었다. 입김이 오이카와의 얼굴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그래.”
짧은 답에 오이카와는 얼굴을 무너뜨리며 웃었다. 늘 남에게 예쁘다는 소리만 듣던 녀석이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차가운 뺨을 감싸 쥐었다가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을 했다. 그는 코트를 입고 목도리를 두 개 챙겼다. 오이카와는 얌전히 현관에 서서 이와이즈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와이즈미는 두 개의 목도리 중 얇은 것을 자기가 하고 두꺼운 것을 오이카와에게 둘러주었다. 가자. 오이카와의 손을 잡아 자신의 주머니 안에 쑤셔 넣었다. 죽어버리자고 말한 쪽은 오이카와였으나 앞장 선 것은 이와이즈미였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인 채 이와이즈미를 따라 걸었다. 몇 번인가 “어디로 가고 싶은데?”라고 물었지만 오이카와에게서는 답이 없었다.
두 사람은 하염없이 걸었다. 이런 추운 날에 할 만한 짓은 아니었다. 이와이즈미는 이따금씩 뒤를 돌아 오이카와의 상태를 살폈다. 주머니에서 맞잡고 있는 서로의 손에 땀이 뱄다. 따뜻한 곳이라고는 오로지 그곳 하나였다.
“어떻게 할까. 이대로 걷다가 산으로 들어갈까? 산에서 밤을 새면 얼어 죽을지도 몰라.”
농담으로 들릴 법한 말이 생각 이상으로 진지했다. 여전히 오이카와는 아무런 답이 없었다. 그저 이와이즈미를 따라 걸을 뿐이었다. 이미 혼백이 나가버린 것 같기도 했다.
“아니면 도로변에 서서 커다란 트럭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 다른 방법은 뭐가 있을까. 지금 심야버스 타고 도쿄로 갈까? 도쿄 타워 꼭대기에서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거야. 재수 좋으면 TV에도 나올 수 있겠네.”
덤덤한 목소리가 추위에 조금 쉬어있었다.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를 힐끗 돌아보았다. 오이카와가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무 똑바로 걷고 있어서 눈을 감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와이즈미는 걸음을 세웠다. 그러자 오이카와 또한 멈춰 섰다.
“오이카와,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자.”
어떻게 할까? 이와이즈미는 낮게 속삭이며 오이카와를 끌어안았다. 오이카와의 손이 이와이즈미의 목도리 틈새로 기어들어왔다. 한 손은 따끈하고 한 손은 차가웠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목을 조르듯 붙잡았지만 손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어깨에 이마를 기대었다. 배구하고 싶어. 다 갈라진 목소리가 처량하게 말했다. 끝의 끝에 몰아세워진, 벼랑 끝에 섰다가 겨우 돌아온 자의 목소리였다. 나 배구하고 싶어. 이와이즈미는 오이카와의 등을 토닥였다.
“그래, 내일 하자. 그런데 우리 아마 내일 감기 걸릴 거야.”
이와이즈미는 힘없이 웃었다. 몇 번인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입술을 꾹 깨물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오이카와는 조그맣게 흐느꼈다. 아무도 없는 어두운 거리에서도 그는 소리 내어 울지 못했다. 그건 이와이즈미도 마찬가지였다. 죽기로 결심하여 떠났으나 결국 그러지도 못했다. 더 이상 패배와 다투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밟아 죽이기에 너무 커다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을 접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더 고단하였다. 하루쯤 죽을 만큼 열병을 앓는 것조차 쉬는 것으로 여겨졌다. 털고 일어나면 무엇이든 조금 나아져있기를 바랄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