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소리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베개 주변으로 꽃잎이 흩어져 있다. 입안에서 혀를 굴리니 꽃향기가 일어나고 혀끝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손가락을 넣어 찢어진 꽃잎을 꺼냈다. 카게야마는 두 손으로 이마와 뺨을 문대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꽃잎을 쓸어 손바닥 위로 모았다. 꽃줄기도 없이 마냥 흩어져 있는 색색의 꽃잎은 본래 무슨 꽃인지 알 수가 없을 정도로 크기도 모양도 다양했다. 마치 성한 꽃을 마구잡이로 뜯어다가 뱃속에 숨겨놓은 것처럼, 밤이 되면 몰래 내보내는 것처럼 질서가 없었다. 손에 그러쥔 꽃잎을 쓰레기통 안에 넣고, 손바닥에 달라붙은 마지막 꽃잎까지 떼어내고 나면 평소와 별반 다르지 않는 아침이 시작된다.
하루 종일 하는 것이라고는 배구, 배구 생각, 시합 시청밖에 없는 카게야마지만 귀가 달려있으니 세상사에 완전히 무지할 수는 없었다. 카게야마는 자기 방 쓰레기통에 버려진 꽃잎들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히 무관심한 이야기라 제대로 듣지 못해 그 이름조차 머릿속에서 가물가물했다. 카게야마는 여자애들이 자기들끼리 바싹 붙어 어제 꽃을 토했노라 고백하던 것을 떠올려냈다. 울먹이던 목소리에 섞인 수줍음이 참 쓸모없이 느껴졌던 등굣길이었다. 하지만 막상 자기 일이 되고나니 그들이 느꼈을 초조함을 알 것 같았다. 아무리 이를 닦아도 지워지지 않는 꽃향기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조용한 학교 정문에 발을 디뎠을 때, 누군가 뒤에서부터 카게야마의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부터 누구인지 알았다. 몸을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려는데, 마치 기름칠이 되지 않은 로봇처럼 몸이 삐거덕거렸다. 카게야마가 걸음을 멈춘 사이, 스가와라는 재빨리 그의 옆에 섰다. 꽤 멀리서부터 뛰어왔는지 숨이 조금 빨랐다. “오늘 일찍 왔네?”하고 건네는 인사에 카게야마는 고개를 숙인 채 “스가와라 씨도요.”라고 대답했다. 혹시 꽃향기가 샐까 걱정이 되어 목소리가 작게 나갔다. 그런 것은 모를 스가와라는 기특하다는 듯 카게야마의 어깨를 도닥거렸다. 부실에 다가갈수록 스가와라가 조금 앞에, 카게야마는 자꾸만 뒤쪽에 서게 되었다. 스가와라가 몇 번인가 무의식적으로 걸음을 맞추었지만 그때마다 카게야마가 걸음을 늦췄다. 몸에 배인 상냥함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스가와라는 열쇠를 찾기 위해서인지 고개를 숙여 가방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카게야마는 그 행동을 지켜보았다. 종이접기를 반듯하게 하듯이 꾹꾹 눌러서 보았다. 가방 쪽으로 쏠린 고개와 그를 따라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한 올 한 올 눈에 들어왔다. 목구멍이 간지러웠다. 마침내 열쇠를 찾았는지 “찾았다.”하고 중얼거리는 입술 또한 느릿하게 시야에 새겨졌다. 하얀 손 틈으로 삐죽 튀어나온 차가운 색감의 열쇠와 부실로 걸어가는 그의 걸음걸이 하나하나 놓치지 않았다. 스가와라가 부실 열쇠구멍에 열쇠를 넣어 돌리는 사이, 카게야마는 기침을 했다. 스가와라가 눈을 크게 뜨며 돌아보았다.
“어디 아파?”
카게야마는 손바닥으로 입을 가린 채 “아니에요.”하고 대답했다. 이번에도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스가와라는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내다가 씩 웃으며 “아프면 참지 말고 말해라?”하고 말했다. 카게야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가와라가 부실 안으로 들어가는 사이, 카게야마는 입에서 손을 떼어냈다. 어디에도 몸을 싣지 못한 꽃잎이 처량하게 흘러내렸다. 카게야마는 이 꽃잎의 정체를 알고 있다. 초조하고, 더불어 수줍었다. 그런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