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맡에서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었다. 당연히 알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눈을 감은 채 유심히 듣고 있자니 알람이 아니라 핸드폰 벨소리였다. 한 손으로 잡아채 이불 속으로 끌고 들어오자 액정 위로 히나타의 이름과 현재 시간이 떠올랐다. 아침 연습이 진작 시작되었을 시간이었다. 카게야마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전화를 받았다. 히나타의 목소리가 쨍하니 깨졌다. 왜 늦느냐, 게을러진 것이냐, 다짜고짜 따지는 말들에 짜증이 나서 “조용히 좀 해.”하고 답했는데 목소리가 세 갈래로 찢어졌다. 그 소리에 히나타도 흠칫 놀랐는지 몇 초간 말이 없다가 또 “너 감기야?”하고 큰 목소리로 물었다. 바보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조용히 좀 하라는 말의 뜻을 모를 정도인 줄은 몰랐다. 무거운 머리를 베개에 묻고 숨을 뱉자 코끝과 뺨이 뜨끈해졌다. 핸드폰 너머로 히나타가 부원들과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진짜 아프대? 목소리가 괴물 같은데요. 별 일이네. 주변에서 한마디씩 거들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시끄럽다, 시끄럽다. 그렇게 생각할 무렵 히나타와는 전혀 다른 부드러운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카게야마? 감기야?”
어디로도 흩어지지 않는 정갈한 목소리였다. 카게야마는 입술을 베개에서 떼어내고 몸을 조금 일으켰다. 묵직한 몸을 움직이는 동안 다시 한 번 카게야마? 하는 부름이 들렸다. 핸드폰의 아랫부분을 손으로 막고 목을 가다듬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죄송합니다. 지각할 것 같아요.”
이번에도 괴물 같은 목소리가 튀어나갔다. 스가와라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나올 수 있겠어? 많이 아픈 것 같은데.”
“네, 연습도 해야 하고…….”
“연습 때문에 나오려는 거면 더 확실히 쉬어야지! 컨디션 관리 중요하잖아.”
여태까지와 다른 단호한 어투였다. 계속해서 분명 감기가 맞다는 둥, 이럴 때는 꼼짝 말고 잠을 푹 자면 금방 낫는다는 둥. 이런저런 걱정 어린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카게야마는 벌겋게 된 뺨으로 이야기를 들으며 가만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스가와라에게는 보이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아까는 머리를 조금만 흔들어도 눈앞이 흐릿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알았지? 첫 번째는 푹 자는 거야. 약속했다?”
네, 하고 답하니 곧 전화가 끊겼다. 뺨에 대고 있던 핸드폰이 뜨끈해서 통화 시간을 확인해보니 생각보다 오래 붙잡고 있었다. 통화 목록에 떠오른 히나타의 이름을 보며, 핸드폰을 건네받을 때 스가와라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카게야마는 묵직한 눈꺼풀을 누르며 숨을 내뱉었다. 아랫입술을 빠져나가는 숨이 따뜻했다.
도로 잠에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을 감고 있었는지 앞이 캄캄했다. 눈꺼풀 사이로 빛이 가만가만 스며들어왔다. 눈을 뜰까, 말까 고민하는데 손가락 사이사이가 간지러웠다. 물 안에 손을 넣은 것처럼 차오를 듯 말 듯한 감촉이었다. 천천히 눈을 뜨자 물이 확 빠져나가는 듯 손이 허전해졌다. 눈을 깜박거리다가 가늘게 떴다. 눈앞의 흰 인영을 알아차릴 쯤 헉, 하고 헛숨을 삼켰다.
“스가와라 씨?”
급히 몸을 일으키자 스가와라 역시 놀란 듯 눈을 둥글게 떴다.
“혹시 나 때문에 깼어?”
“아니에요. 그런데 저희 집에는…….”
“당연히 병문안이지. 시킨 대로 잘 자고 있네. 착하다, 착해.”
자고 있는 모습을 보였구나, 라고 생각하니 멋쩍어져서 시선을 가라앉혔다. 스가와라의 허벅지 위에 올라가 있는 그의 손이 보였다. 카게야마가 지켜보는 동안 스가와라는 손을 무릎으로 옮겼다가, 주먹을 꼭 쥐었다가, 또 다시 허벅지 위로 올리는 것을 반복했다. 스가와라 씨, 원래 손을 가만히 못 두시던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또 다시 손이 간질간질했다. 카게야마는 눈을 아주 느리게 깜박였다. 시선을 올려 스가와라의 눈과 마주쳤다.
“어, 왜?”
이번에는 허벅지에 손을 문대고는 엉덩이 뒤쪽으로 손을 숨긴다. 스가와라의 뺨과 눈가가 감기에 걸린 사람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옅은 머리색 때문인지 더욱 도드라져보였다.
“아뇨, 그저…….”
카게야마는 입을 가린 채 기침을 했다. 무언가 알 듯 말 듯한 기분과 함께 얼굴에 열이 올랐다. 꺼낸 말을 마저 이어야하는데,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열로 꽉 막혀있던 머릿속이 와글와글 시끄러웠다. 손끝이, 그 마디마디가 유난히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