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오이 FHQ 소설 「Kill Your Darlings」
이와오이 소설본 「Kill Your Darlings」
인쇄(청박) / 70페이지 / 6000원
FHQ+현대. 마왕 오이카와를 죽여야하는 용사 이와이즈미와
현대에 환생한 후 서로에게 위화감을 느끼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
샘플▼
창밖으로 바다가 보인다. 석양이 지는 노란 바다에는 배 한 척 보이지 않고 오로지 파도소리뿐이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니 이번에는 창밖으로 해가 뜬다. 아직 반도 떠오르지 않은 그 태양 아래로 새가 날아가고 있었다. 그 한가로운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이곳이 마왕성이라는 것도 잊어버릴 것 같다. 다시 걸음을 뒤로하자 이번에는 작렬하는 태양 아래 사막이 펼쳐진다. 뜨거운 열기가 뺨을 괴롭히는데도 넋이 나가 그 광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모래가 창틀을 타닥타닥 부딪칠 쯤에야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두어 걸음이면 금방 창밖 풍경이 변했다. 눈이 부신 설산에서 축축한 늪지가 되었다가 한적한 산길에서 용암이 펄펄 끓는 화산지대가 되기도 했다. 끝없는 복도와 걸음마다 바뀌는 창밖의 풍경이라니, 꿈도 이보다는 현실적이리라. 지루할 틈이 없게 해주겠다던 말은 허사가 아니었다.
우리는, 그러니까 나와 내가 이끌고 온 마왕토벌대는 분명 마왕성 입구에 도달해 있었다. 붉은 문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해서 고개를 한참이나 올려다봐야 끝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을 살짝 만지자 거짓말처럼 밀려났다. 그에 기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보아도 마왕이 직접 문을 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던 까닭이다. 불안해하는 병사들을 달래며 그 문을 통해 진입했다. 어둡고 깊은 터널을 한참이나 걷던 나는 주변이 소름 끼칠 만큼 조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떼를 지어 뒤를 따르던 병사들의 발소리가 사라져있었다. 몸을 돌리자 그 자리에는 오로지 단 한 사람이 나를 향해 서있었다.
남자는 머리까지 로브를 뒤집어쓰고 작은 등 하나만 들고 있다. 여태껏 내 뒤를 따라왔다고 말하기에는 그 빛이 너무 환해서 모를 리가 없었다. 촛대를 쥔 손은 희고 그 손가락에 박힌 손톱은 죽은 사람처럼 검었다. 검을 꽉 쥔 채로 상대를 노려보았지만 로브 아래 보이는 입은 태연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마왕 오이카와라는 것은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 어떠한 증거 없이도 확신을 가졌다. 그는 내게 한 걸음 다가서며 로브를 벗어 얼굴을 드러냈다. 반듯한 얼굴이 화창하게 웃었다.
“오랜만이야, 이와쨩.”
오이카와는 이미 날 알고 있다는 듯 말을 걸었다.
“날 어떻게 알지?”
인상을 찌푸리며 물으니 반가운 듯 웃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는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손에 쥐고 있던 촛대를 떨어뜨릴 만큼 허둥거리기까지 했다. 그가 다가오는 만큼 물러서며 칼을 겨누었다. 오이카와는 억울하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
“나를 몰라?”
적의라고는 하나 없이 어린아이처럼 군다 해도 마왕은 마왕이었다. 칼을 냅다 휘두르자 오이카와가 눈을 깜박였다. 그뿐이었다. 고작 그 정도였는데도 칼이 그에게 닿지를 않았다. 마치 누가 내 옷깃을 잡고 자꾸만 뒤로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그와 나는 한참이나 촛불을 사이에 두고 그 난리를 피웠다. 아니, 땀을 흘리는 건 오로지 나의 몫이었고 오이카와는 속상하다고 훌쩍거리기까지 하며 발을 땅에서 떼지 않았다. 우는 사람에게 의미 없는 칼질을 반복하는 일에 진이 빠지지 않을 사람이 없었다. 마치 우스꽝스러운 연극이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땅에 칼을 꽂고 혼란스러워하는 사이 오이카와가 조심스레 다가왔다. 촛대를 들지 않은 손으로 자기 얼굴을 느리게 더듬거린다.
“이와쨩, 내 얼굴 잘 봐봐. 기억 안나?”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대역 죄인이라는 뜻이냐?”
“대역죄라니! 가만가만, 생각해보니 인간들 입장에서는 마왕이랑 친구면 대역 죄인이지……. 그럼 이와쨩은 대역 죄인이네!”
듣자듣자 하니 마왕 죽이러 여기까지 온 사람을 마왕 친구로 만들지를 않나, 심지어는 대역 죄인까지 만들어버린다. 따지듯 “대체 누가 네 놈이랑 친구라는 거야.”라고 말하자 오이카와는 눈에 보일 만큼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렇구나. 이와쨩은 날 기억 못하는 구나.”
(중략)
옷 속으로 차가운 손이 들어오는 바람에 펄쩍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당황한 얼굴로 주변을 살피는데 이번에는 아예 이불 속으로 차디찬 몸을 들이민다. 차갑다고 밀어내도 목을 꼭 끌어안고 버티는 통에 승리를 쟁취하지 못했다. 결국 오이카와의 언 몸을 녹이는 인간난로 신세가 되고야 말았다. 마른하늘의 날벼락만큼이나 갑작스러운 방문이었다. 한숨을 쉬며 오이카와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잡아당기는 일을 반복하자 오이카와가 또 다시 몸 안에 손을 쑥 집어넣는 바람에 “차갑다고!”하며 소리를 쳐야했다. 그 소리를 듣고 방까지 찾아온 엄마는 그러지 말고 슬슬 일어나라며 채근했다. 아주 오랜만의 늦잠이었다. 휴교일이 월요일인 덕에 찾아온 꿀 같은 날이었건만 오이카와는 잠도 안자고 여기까지 쳐들어왔다.
“넌 날 괴롭히려고 태어났지?”
자꾸 장난 칠 생각만 하기에 오이카와의 귀를 쭉 잡아당겨주었더니 엄살 섞인 비명을 지른다. 이내 이불이 토해내는 모양새로 침대를 탈출하더니 서운한 듯 입술을 삐죽였다.
“오프에 나랑 그 개 보러 가기로 했잖아!”
“이렇게 이른 아침일 줄 상상이나 했겠냐?”
“꼭두새벽이건 해 진 다음이건 내가 찾아왔는데 반겨주지는 못하고 구박이나 하고!”
어이가 없어 웃으면서도 침대 밖으로 나섰다. 이불을 정리하는 사이 오이카와는 밖으로 나가서 여기서 아침을 먹어도 되느냐고 졸라댔다. 엄마야 오이카와가 오는 걸 보자마자 그 애 몫까지 준비하셨을 테니 안 될 리 없었다. 하품을 하며 방밖으로 나가자 오이카와가 식탁 주변을 오가며 젓가락을 놓고 있었다. 이 집 아들보다 낫다. 문제는 나도 저 집에 가면 ‘이 집 아들보다 낫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이었다. 이래서야 두 집 부모님이 자식을 바꾸자 제안해도 할 말이 없었다.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오니 상이 다 차려져 있었고 부모님과 오이카와는 이미 식탁에 앉아있었다.
“토오루가 젓가락이랑 컵 놓는 동안 넌 뭐했니?”
“세수도 하고 이도 닦았어요.”
예상했던 잔소리를 하시기에 늘 하던 대로 대꾸했을 뿐인데 다들 웃으며 핀잔이었다. 오이카와가 찾아오는 날이면 식탁이 유난히 떠들썩했다. 겨우 아침상일 뿐인데 꼭 저녁 같았다. 아빠는 오이카와가 꺼내려는 개 이야기의 서두만 듣고 일어나느라 아쉬운 눈치였다. 거기서 별 이야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시라 대꾸했다가는 나만 야단맞을 것이 뻔하니 그냥 입을 다무는 것이 상책이다. 아빠를 배웅한 후에 우리는 식사를 다 마치고도 수다를 떨었다. 사실 나는 설거지를 하고 엄마와 오이카와만 떠들었다.
오이카와는 요새 사람들이 예뻐하는 동네 개가 있지 않냐며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이 먹을 것도 주니까 말을 그렇게 잘 듣는다면서요? 할아버지부터 어린애까지 다 좋다고 꼬리 흔들고 쫓아다닌대요.”
“응, 나도 한참 쫓아오기에 소시지 하나 준 적 있어.”
“그쵸. 근데 그 개가 저만 보면 도망가거든요.”
오이카와는 무슨 진지한 말을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자 엄마는 웃음을 터뜨리며 “토오루 너는 원래 동물들이랑 사이가 안 좋잖니.”했다. 오이카와는 그게 다가 아니라며 수선을 피웠다. 예전에 내가 다 똑같은 말이라고 말해주었지만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