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녀와 목걸이 上
예이~ 옛날에 썼던 자캐글 제목 지은 기념으로 약간의 추가분과 함께 올림
캐릭터무단사용주의. 근데 리안이랑 첼리오 추가분이 없어...
몇 년 후에 下가 나오면은 그때 또 무단사용할테니까요 꾸중은 지금 받습니다
머피의 법칙. 뭐, 그런 것이 있다. 타인의 예를 들어봐야 결론은 ‘재수 없는 날’이라는 것밖에는 나오지 않으니 생략하도록 하자. 중요한 것은 첼리오가 그 머피의 법칙을 제대로 겪었다는 것이다. 첼리오는 오후에 술집 문을 열기 위해 출근했다. 개나리든가 진달래든가. 더 이상 아무도 제대로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술집 간판 아래로 들어가다가 그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가게를 털어보려고 했던 것인지 가게 문짝이 고장 나 있었다. 자물쇠가 제대로 고장나버린 문은 열리지도 닫히지도 못한 채 애매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첼리오는 일단 자물쇠를 뜯어내고 가게 문을 활짝 열었다. 어차피 오픈 시간에는 가게 문을 열어두니 자물쇠가 고장이 나든 말든 상관이 없었다. 그래도 내일 아침이 오기 전에는 고쳐놔야 하니 지나가는 아이를 붙잡고 심부름 값을 줄 테니 수리공을 불러 달라 했다. 아이는 달달한 사탕 한 줌을 받고 씩씩하게 그러겠노라 답했지만 수리공은 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아이가 하늘로 솟은 건지 수리공이 땅으로 꺼진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물쇠가 사람 속 꽤나 썩인다고 생각하던 첼리오는 헝겊으로 그릇을 반질반질하게 닦다가 와장창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맥주통 위에 도둑고양이 한 마리가 서 있었다. 별로 내쫓을 생각은 없었는데 다짜고짜 첼리오에게 달려들더니 손을 할퀴고는 달아나는 것이 아닌가. 그 와중에 식기들을 죄다 밟고 가는 바람에 몇 개는 땅으로 떨어지고 몇 개는 흐릿하니 발자국이 남아버렸다. 망할 도둑고양이. 첼리오는 자물쇠에 쌓인 화를 도둑고양이에게 풀었다.
거기서 재수 없는 일이 끝났더라면 운이 조금 안 좋았다며 훌훌 털어버렸을 것이다. 애초에 그에게는 망할 악운 같은 친구들이 있지 않던가? 그놈들이 오면 좀 부려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스렸지만 뻔질나게 들이닥치던 친구 놈들은 그날따라 좀처럼 나타나질 않았다. 그 와중에 손님은 얼마나 미어터지는지, 또 그 미어터지는 손님들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재수가 없는지. 잘 먹고 잘 취하고 잘 자던 단골들로만 가게를 꽉 채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디 장사라는 게 쉬엄쉬엄해도 만만하게 되던가. 까탈스러운 손님부터 지나치게 시끄러운 손님, 외상부터 하려는 손님에 술집 주인이 자기 몸종인줄 아는 손님까지 별의 별 손님들이 다 찾아왔다. 처음에는 우스갯소리로 넘기려던 첼리오도 종래에는 심기 불편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애초에 진상 손님을 참는 이유는 그가 이 술집에 애정이 있기 때문이지 돈이 궁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으므로 당장 멱살을 잡아다가 술집 밖으로 내쫓을 수도 있었으나 첼리오는 조용히 참았다. 그것은 그가 화를 낼 수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저 화가 너무 솟다보니 아예 차곡차곡 마음 한 편에 쌓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만약 머피의 법칙에 정도가 있다면, 첼리오가 겪고 있는 것은 꽤 높은 단계의 것이었다.
오늘은 가게 문을 빨리 닫아야겠어. 첼리오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누군가 술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은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고 말하려는데, 돌아본 자리에는 익숙한 얼굴들이 하품을 하고 있었다. 재수 없는 놈, 철 안 드는 놈, 답답한 놈. 그렇게 셋이서 줄을 지어 들어오더니 하나씩 첼리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안녕, 안녕하세요. 첼리오는 그들의 인사를 대충 받은 후에 하던 일을 마쳤다. 루시안이 먼저 주방으로 들어왔다.
“뭐야, 너 오늘 기분 안 좋아?”
루시안은 눈을 둥그렇게 뜨고 물었다. 첼리오는 짤막하게 그렇다고 답하고는 대충 맥주와 음식을 가리켰다. 알아서 가져다가 먹으라는 뜻이었다.
“리안은 오늘 안왔어?”
“어. 어제 왔다갔어. 일이 바쁘다던데.”
“엇갈리네.”
지겨우니 상관없다고 말하면서도 내심 아쉬운 눈치였다. 그는 맥주와 음식을 알아서 챙겨다가 청휘를 불렀다. 곧 청휘도 주방으로 들어와서는 음식이 담긴 접시를 양손에 들었다. 그리고는 첼리오를 보며 “너 오늘 기분 나빠?”하고 루시안이 했던 물음을 반복했다. 첼리오는 또 다시 짤막하게 답하며 자기 몫의 맥주를 따라다가 친구놈들이 앉은 테이블에 자리했다. 그런데 이 친구놈들은 답지도 않게 흥신소 일 이야기나 주절거리는 것이었다. 그놈의 흥신소 망해가는 줄 알았는데 손님이 꾸준히 있는지 무슨 골목에 가면 그 놈이 있다는 둥, 저 쪽에 가야 그 물건을 찾을 수 있다는 둥 그런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는데 첼리오 입장에서는 알 턱이 없는 이야기였다. 이 지겨운 놈들이랑 할 얘기가 어디있겠냐만은, 오늘 머피인지 개피인지 때문에 기분은 최악에 고생은 찍 싸게 했는데 아까 고양이놈이 깨먹은 접시 값을 따져보면 또 그리 많이 번 것 같지도 않았다. 사람이 돈이 아무리 많아도 헛고생 하는 건 당연히 싫은 법이다. 거기다 이놈들은 돈도 벌고 있는 것 같은데 외상값도 안 갚아. 첼리오는 맥주를 벌컥 들이마시고는 테이블 위에 탁 내려놓았다.
“그런데 너네는 외상값 갚을 생각이나 있냐?”
청휘는 턱을 괸 채로, 루시안은 맥주잔을 든 채로 3초간 얼어붙었다. 첼리오는 그 반응을 보며 ‘안하는 건 아니군.’이라고 생각했다. 이 구제 못할 놈들이 나름대로 생각이라는 걸 하면서 산다는 걸 깨닫자 아, 그는 성모처럼 마음이 놓였다. 치솟는 짜증에 한 마디 던지기는 했지만 진심으로 외상값을 받고 싶어 꺼낸 말도 아니었다. 어쨌든 그들은 그 뒤로 아주 잘 놀았다. 청휘는 테이블에 머리를 박고 잤으며 루시안은 실실 거렸고 라임은 와인을 꺼내다 마셨다. 여느 날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리안은 꽤나 피곤한 얼굴로 술집에 들어왔다. 그 날은 거짓말처럼 손님이 없었는데, 리안은 그걸 마음에 들어 했다. 친구 술집에 손님이 없는데 즐거워하다니. 첼리오는 뭐라고 타박했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얼마 전에 고생을 했더니 가끔씩 한가한 것도 나쁘지 않게 여겨진 것이다. 리안은 시원한 맥주와 구운 소세지를 주문했다.
“오늘 한가하네? 흥신소 놈들도 없고.”
“어어, 며칠 안 오네.”
“며칠? 얼마나 됐는데.”
첼리오는 오른쪽 손가락을 접어가며 날짜를 셌다. 평소 같으면 숫자 세 개에서 멈췄을 텐데 그보다 두 개나 더 접혔다. 첼리오는 무언가 위대한 일을 하는 것처럼 왼손을 들어 엄지를 반쯤 굽혔다. 그의 엄지가 완전히 접힐 듯 말 듯 애매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리안은 눈썹을 한 번 움찔거리며 “믿을 수 없네.”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흥신소 트리오가 나타나지 않은 지 벌써 6일째였다. 이 밤이 지나면 자그마치 일주일이었다.
“뒤졌나?”
누가 들으면 농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적어도 첼리오와 리안은 진심이었다. 그 양심 아작 난 흥신소 녀석들이 공짜 밥을 먹으러 오지 않다니? 그들은 반쯤 마신 맥주를 내버려두고 가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골목과 골목을 걸어 개중에서도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엉성한 간판에 청휘가 대충 흘겨 쓴 ‘다해줄게 흥신소’라는 글씨가 보이고 문짝 너머로 컴컴한 내부가 보였다. 문은 헐겁게 잠겨 있었는데, 리안은 그걸 너무나도 쉽게 풀어냈다. 누가 보면 열쇠라도 들고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두 사람은 어두컴컴한 흥신소에서 불을 켜고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렀다. 첼리오는 안쪽에 배치된 침실로 들어갔지만 마주한 것은 텅 빈 침대들뿐이었다.
“첼리오, 이리 와봐.”
“왜?”
“이 새끼들 돈 벌러 간 것 같은데?”
리안이 서 있는 자리는 흥신소 트리오가 늘 드러누워 노닥거리던 낡은 소파 앞이었다. 리안은 쪽지 하나를 들고 있었는데, 소파 앞에 배치된 낮은 테이블에 놓여 있었다고 했다. 첼리오는 쪽지를 건네받았다. 간판과 똑같은 글씨체로 ‘외상값 벌어올게. 문 다시 잠그고 나가라.’라고 적혀 있었다.
“와, 문 따고 들어올 줄 어떻게 알았지.”
“지긋지긋한 놈들이네.”
첼리오와 리안은 문을 잠근 채 밖으로 나왔다. 마시다 만 맥주가 아까웠다. 벌써 시원한 기운도 쏙 빠지고 거품도 쏙 빠지고 톡 쏘는 맛도 쏙 빠졌을 것이다. 다 식은 소시지도 아쉬웠다. 제일 아까운 건 이놈들이 미친 짓하는 것이 한두 번도 아닌데 괜히 죽었을까 걱정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이것들은 대체 어딜 간 거야?
허름한 소파 양쪽으로 루시안과 청휘가 앉아있었다. 그들은 각자 고양이를 껴안고 있거나 책을 설렁설렁 넘기며 어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표정이 어쩐지 떨떠름했다. 청휘는 제대로 읽고 있지도 않던 책을 대충 덮은 후에 앞에 놓인 테이블에 던져놓았다. 루시안과 고양이 치즈가 동시에 청휘를 돌아보았다.
“야, 우리 외상값 얼마나 돼?”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첼리오한테 물어볼까?”
“걔도 모를걸.”
그건 그렇지. 첼리오는 애초에 그들이 마신 술은 적어놓지도 않았다. 음식도 마찬가지였다. 장부를 뒤지면 대충 비는 것들이 있을 테니 그 값이 외상값이겠지만 그걸 일일이 찾아내는 것도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 이틀 외상이었어야지. 둘은 다시 각자 하던 일로 돌아갔다. 루시안은 치즈를 어르고 달래며 놀았고 청휘는 책에 있는 글자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읽는 것이 아니라 그림 감상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아, 지루해. 그렇게 생각할 쯤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 저녁은 빵으로 하자고 결정한 뒤라서, 심부름을 보냈던 라임이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개를 들고 보니 자리에 서있는 것은 잘 차려입은 소년이었다. 쨍한 금발에 맑은 하늘같은 눈동자, 순진한 눈매와 마른 몸이 척 보아도 곱게 자란 도련님이다. 이런 흥신소에 드나들 얼굴이 아니었다.
“저기…….”
청휘와 루시안은 딱히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지 않았다. 다만 엄청 귀찮은 표정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귀족과는 손끝도 닿기 싫어했으므로―물론 예외는 있지만―저 순진한 태도마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속보이는 태도 때문인지 도련님은 꽤나 겁을 먹은 얼굴로 주춤거렸다.
“우리 직원 좀 있다 오니까 앉아서 기다려요.”
반가운 손님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내칠 것도 아닌 이상에야 어린 애에게 몰인정하지는 않았다. 루시안이 먼저 앞에 놓인 소파를 가리켰다. 도련님이 몸에 두른 옷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자리였으나 뭐 어쩌겠는가. 이런 것밖에 없는데. 주춤주춤 소파로 와서 앉은 도련님을 보며 두 사람은 또 각자 할 일을 했다. 루시안이 “라임 언제 갔지?”하고 묻자 청휘가 “30분쯤 전에.”라고 답한 것이 그들 사이의 유일한 대화였다. 째깍째깍 시간이 흘렀다. 보통은 ‘네놈들이 처리하면 될 일 아니냐?’하고 묻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도련님은 그러지 않고 가끔 옷매무새를 다듬으며 살짝 일어났다가 앉는 것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그의 허리춤에서 잘그락 거리는 소리가 났다. 청휘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소리를 듣다가 어라, 하며 자기 턱에 손을 얹었다.
“도련님, 얼마 갖고 왔어요?”
“그게, 이런 곳은 시세가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전직의 전직의 전직 어드메에 소매치기 경력이 있는 두 사람 앞에서 시세를 모른다고 답하다니. 참으로 가엾은 도련님이 아닐 수 없다. 청휘는 멍하니 도련님의 허리춤을 바라보다가 슬쩍 웃었다. 루시안도 치즈의 턱을 살살 긁으며 도련님에게로 시선을 고정하더니 말을 꺼냈다.
“그래서 무슨 일을 맡기고 싶은 건데요? 그거에 따라 다르죠.”
“사람 찾는 일은 비싸요. 집나간 건 안하고요.”
“아, 돈 훔쳐서 집 나간 거면 해요. 나쁘잖아.”
“비싸요.”
귀족이라서 짜증난다는 티를 팍팍 내던 두 사람은 잘그락 거리는 동전 소리를 듣자마자 도련님에게 질문을 던지다가 마지막은 비싸다는 말로 끝냈다. 도련님은 당황한 얼굴로 등을 소파에 바짝 붙였다. 아, 겁을 줬나? 두 사람은 간만에 조마조마한 얼굴을 했다. 돈을 많이 줘도 귀족과 일을 하는 것은 싫어하는 두 사람이지만, 이번만큼은 예외로 하기로 했다. 그야, 첼리오 좀 빡쳐 보였고…… 설마하니 친구를 죽이겠냐만은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불쑥 솟은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 마음가짐 하나로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으니 세상이 이런 세상물정 모르는 도련님을 보내주는 것도 당연한지 몰랐다. 도련님은 잠시 입술을 오물거리며 고민하는 듯 하더니 이내 각오한 듯 입을 열었다.
“물건을 하나 찾고 있어요.”
청휘는 테이블 위를 굴러다니던 펜과 수첩을 들고 고개를 까딱까딱했다. 계속 말하라는 뜻이다.
“목걸이인데, 어머니가 결혼 전에 할머니께 받은 물건이라고 하셨어요. 할머니는 증조할머니께 받았고요. 이번에 누나가 결혼을 하거든요. 그래서 그걸 받고 싶어 하는데…….”
도련님의 어깨가 축 쳐졌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힘없이 늘어진다.
“어머니는 제가 다섯 살 때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아버지께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얼마 전에 어떤 여자한테 선물로 줬다고 하시더군요. 그걸 돌려받고 싶어요.”
“그냥 그 여자한테 목걸이 값을 주면 되잖아? 많이 비싼 거예요?”
도련님의 주머니에 들어있는 돈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리 중요한 것이라면 돈으로 해결하는 방법도 있을 듯 했다. 그러나 도련님은 난감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미 말해봤어요. 그런데 그 여자말로는 자기가 아버지를 너무 사랑해서 도저히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께 여자를 설득해달라고 했더니, 어처구니없게도 자기는 돌려받을 재간이 없다고 하셨어요. 선물을 돌려달라는 말을 하기가 싫으신 거겠죠.”
“와, 완전 어이없어. 자기 아내 물건인데!”
“그 여자는 뭐하는 여잔데요?”
“음, 창녀에요.”
도련님은 ‘창녀’라는 말을 할 때 목소리가 확 줄어들었다. 그런 상스러운 단어를 자기 입에 담는 일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청휘와 루시안은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상대가 귀족이기는 하지만 ‘슬슬 외상값을 좀 내고 싶다.’라고 생각하던 와중이었고, 사연을 들어보니 제법 불쌍한 놈이 아닌가? 그들이 귀족을 썩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예의바른 도련님의 안타까운 사연을 외면할 만큼 매정한 것도 아니었다. 물론 돈이 가장 애쓰긴 했다.
“훔쳐도 돼요?”
상대가 워낙 순진무구한 소년인지라 꼭 물어야할 것 같았다. 여기서 ‘훔쳐도 되냐’라는 말은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해도 되냐는 것이다. 안된다고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건만, 도련님은 금방 고개를 끄덕이며 “무엇이든지요.”라고 답했다.
세 사람이 창녀와 목걸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동안, 흥신소의 막내 라임은 ‘잠시 자리를 비웁니다.’라고 적힌 빵집 앞에 가만히 서있었다. 10분 정도 기다리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주인은 오지 않았다. 그는 ‘잠시’의 기준에 대해서 생각했고, 점심이 지난 지 얼마 안 된 시간에 빵집 주인이 가게를 비워 생기는 손해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라임의 생각에 가게주인은 금방 올 것 같았다. 그는 10분을 더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10분을……. 또 다시 10분을……. 이 날씨에 긴팔에 긴바지를 입고 선글라스까지 낀 남자가 가게 앞에 떡하니 서있으니, 가게 주인이 겁을 먹어 다가오지 못했다는 사실을 그는 죽어도 모를 것이다.
도련님의 마을과 문제의 창녀촌은 흥신소와 제법 거리가 있었다. 세 사람은 흥신소를 대충 치워놓고 테이블 위에 ‘외상값 벌어올게. 문 다시 잠그고 나가라.’라고 적어놓은 후 그 쪽 마을로 향했다. 오랜만의 큰 건수라 귀찮으면서도 묘하게 즐거웠다. 또 돈을 들고 가면 첼리오가 잔소리를 하면서도 평소보다 거한 상을 차려줄 테니 그걸 생각하면 또 들떴다. 그들이 창녀촌 근처에 도달했을 때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오늘 밤을 어디서 보내야하나 고민했다.
“모닥불 피우자. 밖에서 자는 거 진짜 오랜만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도련님 집에 쳐들어가서 하루 재워주시오, 할 것도 아니고 창녀촌에 들어가서 긴긴밤을 보낼 것도 아니고, 또 값싼 여관을 찾아다니기도 귀찮았다. 그들은 나무를 괴롭히거나 주변을 뒤져 땔감을 찾아냈다. 그걸 차곡차곡 쌓아 불을 피우고 주변에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잠을 청하기 전, 잠깐의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청휘는 심드렁한 목소리로 “목걸이를 무슨 수로 훔치지?”하고 물었다.
“소매치기.”
루시안이 전직 소매치기다운 말을 했다.
“그게 최고지. 근데 그 여자가 바깥 외출을 언제 할까?”
“창녀니까 직접 찾아가면 되지 않아? 의심도 안할 것 같은데.”
“근데 여자를 돈 주고 사기 싫잖아. 왠지 하고 나와야할 것 같아. 무슨 로맨스 소설처럼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기만 하면 돼요.’할 것도 아니고.”
“맞네. 그럼 꼬시자. 꼬실 때는 얘기만 들어달라고 해도 돼.”
이쯤에서 루시안이 매우 대충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는 정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의견을 내고 있었다. 물론 그를 탓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자리에 없었다. 그거라도 내니까 다행이었다. 급기야 청휘는 “그래, 그것도 방법이지.”라고 말하며 넋을 놓았다. 그러나 잠시 후, 그는 인상을 팍 쓰며 고개를 들었다.
“야, 너는 얘가 미인계를 쓸 수 있을 거라고 보냐?”
‘얘’가 누구인가 하니, 청휘의 오른쪽에 앉아 한 마디 말도 없는 라임이었다. 루시안은 그를 빤히 보다가 “당연히 못하지.”라고 말했다.
“누가 라임더러 하래?”
“그럼 누가 해? 우리 중에 얘가 제일 잘생겼는데.”
“너는 평소에는 안 그러다가 가끔 진짜 토하고 싶게 굴어. 니 애인은 니 눈에만 잘생겼고요. 아, 치즈 보고 싶다.”
루시안은 모닥불에서 얇은 나뭇가지를 꺼내다가 슝슝 흔들었다. 라임은 앞에서 자기가 미인계를 써야하네 마네, 잘생겼네 못생겼네, 닭살이 돋네, 떠드는데도 얌전히 앉아있었다. 그야, 그 두 사람이 자기에게 뭔가 창의성을 기대한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기다리면 알아서 할 걸 주니, 그때 가서 시키는 일 똑바로 해놓으면 그만이었다.
주거니 받거니 꼭 맥주라도 마신 것처럼 정신 나간 소리를 하던 두 사람은 합심한 듯이 입을 모았다.
“직접 찾아가서 달라 그러자.”
“그래그래, 훔치는 건 그 다음에 해도 돼.”
라임은 길쭉한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쑤셨다. 불똥이 조금 튀었다가 금방 모닥불 안으로 사그라진다. 그는 문득, 모닥불 안에서 타들어가는 금화 주머니를 본 듯 했지만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