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오이] 소꿉친구
4월 1일은 만우절 아니고 이와오이의 날!
하지만 만우절답게 평소보다 달달하게 써보려고ㅇㅁ;ㅇ.. 써보려고..
십년지기 소꿉친구의 속마음은 굳이 들어가 보지 않아도 훤히 보였다. 오늘 귀여운 여자애에게 고백 받았다고 말하면 굳어버리는 입가나 묘하게 싸늘해지는 태도도 그렇지만 내가 울 때면 세상 무너지는 얼굴을 하는 것도, 기분이 좋아 활짝 웃을 때면 고개를 돌린 채 딴청을 피우는 것도 그의 마음을 모두 보여주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이와쨩, 내가 좋지?”하고 물으면 “시끄러워.”라며 솔직하게 털어놓은 적이 없다. 그런고로 나는 오늘도 이와이즈미의 어깨에 기대어 잠을 자고, 등에 매달려 투정을 부리는 일을 계속할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우리가 연애로 얽히지 않은 순수한 소꿉친구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더한 사이가 되면 더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손이 시릴 때 서로의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거나, 야한 영화를 같이 보다가 키스를 한다거나, 팔베개를 하고 나란히 잠든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그러나 이와이즈미는 그런 것들에 욕심이 없는 것인지 고백의 ‘고’자도 꺼내지 않았다.
때때로 이와이즈미가 내게 고백하는 순간을 떠올리곤 했다. 그는 멋대가리라고는 요만큼도 없으니 러브레터를 써오지도 않을 것이며 멋진 멘트를 외워오지도 않을 것이다. 오이카와는 수업 중에 펜을 빙글빙글 돌리면서 ‘좋아해’라고 말하는 이와이즈미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괜찮네. 책상에 엎드리며 납득했다. 그 정도면 받아줄만 하겠어. 분위기도 없고 선물도 없고 정성도 없지만 이와이즈미니까. 생각 끝에 노트 한 장을 뜯어 ‘나 좋아하지?’하고 적은 후에 예쁘게 접었다. 그걸 이와이즈미의 뒤통수에 던지자 그는 인상을 쓰며 그걸 받아들더니 펼치자마자 도로 접었다. 선생님이 그를 더러 “이와이즈미, 수업 시간에 뭐하냐?”하고 묻자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오이카와가 자꾸 말 걸어서 집중이 안 됩니다.”라고 답하기까지 했다. 벌로 교실 뒤에 서게 되어서는 실내화로 바닥을 쿡쿡 찍었다. 드문드문 이와이즈미의 뒤통수를 흘겨보기도 했다. 솔직하지 못한 그는 돌아보는 일도 없이 꼿꼿하게 수업을 들었다. 누가 보면 배구부 에이스가 아니라 전교 1등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화가 나서―절대 삐진 것이 아니다―점심시간이 되어서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괜히 공부하는 척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책상 위로 불쑥 우유빵이 나타났다. 그럼 그렇지.
“굶지 말고 우유빵 먹어.”
“점심시간이거든? 점심 먹을 거거든?”
“그럼 급식실 가자. 밥 먼저 먹고 그것도 먹으면 되잖아. 삐지지 말고.”
“삐진 거 아니야! 솔직하지 못한 이와쨩을 가엾다고 생각하며 한탄하는 중일뿐이라고.”
그러자 이와이즈미는 팔짱을 끼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잘못했어, 망할 놈아. 굶지 말고 일어나.”
“진짜?”
“그래.”
입술을 삐죽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와이즈미가 먼저 교실 밖으로 걸음을 옮기고 나도 그를 바짝 따라잡아 옆에 섰다. 복도를 지나며 이와이즈미가 다른 남자애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 나는 그의 팔꿈치를 슬며시 붙잡았다. 이와이즈미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그래놓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심드렁한 얼굴로 “왜?”하고 돌아보는 것이 너무 어이가 없었다.
“이와쨩, 나는 이와쨩이 날 좋아하는 것도 알고, 이와쨩도 내가 안다는 걸 알잖아.”
“너는 나 안 좋아하고?”
“그건 중요하지 않잖아! 내 말은…….”
이제부터 중요한 말을 하려는데 뒤에서 여자애들 한 무더기가 달려와 나를 빙 둘러쌌다. 내 이름을 부르며 뭐라고 한 번에 말하는데 순간 무슨 말을 하나 했다. 잘 들어보니 지금 점심 먹으러 가는 중이면 같이 먹자는 이야기였다. 나는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해주다가 고개를 들었다. 여자애들 원 밖으로 밀려난 이와이즈미가 나를 가만히 보다가 앞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미안한데 오늘은…….”하고 애써 둘러대며 여자애들 틈바구니를 빠져나왔다. 이와이즈미는 걸음을 얼마나 재촉했는지 벌써 저 앞에 가있었다. 거의 뛰다시피 하여 겨우 따라 잡았다.
“이와쨩, 그렇게 가버리면 어떡해? 나 좋아하는 거 맞아?”
교복 마이를 붙잡고 물었는데 앞에서 홱 돌아서는 바람에 놓치고 말았다. 싸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자 이와이즈미가 평소보다 사나운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이럴 때면 방금 전에 무슨 말을 했는지, 내 어떤 구석이 그를 화나게 했는지 찬찬히 살펴봐야 했다. 방금 전 상황으로 봐서는 분명 여자애들 때문인 것 같았다. 눈치를 슬그머니 살피며 몸을 낮추어 그의 얼굴을 가만가만 들여다보았다. 그의 눈썹이 씰룩이는 것까지 고스란히 보였다.
“이와쨩 화났어?”
“넌 내가 너 좋아하는 다른 여자애들처럼 꺄악꺄악 거리기라도 했으면 좋겠냐?”
이와이즈미의 입에서 나오는 ‘꺄악꺄악’이라는 말에는 높낮이라는 것이 존재하질 않았다. 세상 누구도 그렇게 무덤덤하게 ‘꺄악꺄악’을 언급할 수는 없을 듯 했다. 뒷목을 만지작거리며 “그건 아닌데…….”하고 중얼거렸다. 이와이즈미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내뱉으며 급식실과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당황하여 뒤를 쫓아가자 “밥이나 먹고 와.”하는 언질만 떨어질 뿐 걸음을 세울 기세가 아니었다. 이와이즈미의 걸음은 계단을 쭉 타고 내려가 체육관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빨리 걷느라 운동장 모래 알갱이가 운동화 안으로 들어와 발바닥이 까끌거렸다. 입 다물고 쫓다말고 이와이즈미를 다시 붙잡았다. 한 걸음 더 내딛은 이와이즈미는 잠깐 고민하는가 싶더니 걸음을 세웠다.
“이와쨩을 무시한 게 아니라……. 그 뭐야, 이와쨩이 나를 3년이나 좋아하고, 또 나도 음…….”
“너도?”
먼저 입을 열기는 했는데 말을 이으려니 입이 잘 안 떨어졌다. 귓바퀴가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이와이즈미가 3년이나 고백을 못한 이유도 알 것 같았다. 크게 납득은 안되지만 말이다. 눈을 좌우로 굴렸다가 위아래로 움직였다가 사방을 살펴보았지만 어디에도 컨닝 페이퍼는 존재하지 않았다. 머릿속을 뒤져봐야 했는데, 앞에서 인상 쓴 이와이즈미가 떡 하니 버티고 있으니 그것도 잘 안되었다. 이와이즈미가 내 어깨를 붙들었다.
“너는 어떤데?”
“나는…….”
말을 하려는데 고개가 자꾸만 숙여졌다. 이와이즈미가 재촉해서 겨우 고개를 들었나 싶으면 옆으로 돌아가고, 또 다른 데를 보고 자꾸만 시선이 왔다갔다 했다.
“나는, 음……. 나도…….”
한참동안 말을 골랐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아 결국 울상을 지었다. 그러자 이와이즈미가 헛웃음을 뱉으며 한 손으로 눈가를 꾹꾹 눌렀다.
“3년 아니고 6년이야, 바보야. 그것도 모르면서 무슨.”
밥이나 먹자. 이와이즈미는 내 등을 슬쩍 밀었다. 방금 전 대화에 푹 담겨있던 나는 그가 밀면 밀리는 대로 당기면 당기는 대로 어정쩡하게 걸어갔다. 그러는 사이에 몇 번인가 이와이즈미에게 “6년?”하고 물었는데 그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시끄러워.” 정도였다. 다시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에 이와이즈미를 붙들고 “그런데 왜 고백 안 해?”하고 물었다. 평소라면 장난 반 진심 반이었겠지만 지금만큼은 솔직하게 궁금했다. 약간 괘씸한 마음도 있었지만 애써 묻었다. 이와이즈미의 답이 궁금한 까닭이었다. 그 또한 나의 물음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옅은 신음을 흘리며 대답을 피했다.
“짝사랑 안 지겨워?”
“그 놈의 짝사랑타령…….”
“그렇잖아? 고백 안했으니까 어쨌든 짝사랑이잖아?”
팔에 찰싹 붙어 따져 물었다. 어떻게든 급식실로 가서 이 화제를 벗어나려고 용 쓰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그렇게는 안 된다. 꼭 나무덩굴처럼 꼭 매달려 답을 재촉하고 있자니 지나가던 애들 몇이 보고 “너네 또 그러냐?”하며 한 마디씩 던졌다. 그때마다 이와이즈미의 뒷목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한 무리의 남자애들이 지나간 후에야 한 손으로 입을 가린 채로 눈을 굴리며 말을 꺼냈다.
“아무리 너라도 나만 안달 난 건 싫어.”
이와이즈미의 달아오른 뒷목을 보며 나 역시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항복 하듯이 두 손을 떼어놓고 한 걸음 물러났다. 이와이즈미 역시 나처럼 두 손을 들고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밥이나 먹자……. 나 지금 이 말 두 번째야.”
기묘한 정적 속에서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이와이즈미였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두 손을 내렸다. 이와이즈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까와 달리 우리 사이에는 약간의 거리가 존재했다. 두 어깨가 맞붙지 않았고 내가 이와이즈미의 팔을 붙잡는 일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손끝과 어깨가 화끈거렸다. 아까까지만 해도 머릿속에 얌전히 담겨있던 점심 메뉴가 하나도 생각나질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