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누님 생일 축하글'-')/ 늦어져서 미안해ㅠㅠ
원작파괴 주의(소심
첫 인터하이의 겨울이 끝날 쯤, 나루코와의 관계는 닳고 닳아 있었다. 더 이상 그 애의 눈을 봐도 투지가 끓어오르지 않는다. 어쩌다 나루코가 나를 재치고 달려 나가면 심장 가장 깊숙한 곳이 쿵 뛰다가도 바닥에 질척하게 쌓인 눈처럼 서늘해지곤 했다. 앞서가는 나루코의 등과 쉼 없이 돌아가는 자전거 바퀴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내 속도가 느려지곤 했다. 한 겨울에도 비 오듯 쏟아지던 땀이 식고나면 냉기가 몸을 얼렸다. 닳고 닳았다는 말은 그만큼 오래 부딪혔다는 뜻이기도 했다. 나루코와 나는 지겨울 정도로 서로 다투었다. 걸핏하면 서로를 물고 늘어졌고 몸이 지치면 입으로라도 싸웠다. 나란히 누워 숨을 헉헉 거리면서도 서로를 비난했던 것은 겨룰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느리게 달리는 자전거는 중심을 잡기가 어렵다. 차체가 양옆으로 조금씩 흔들리는 모양새가 댄싱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한참 달리다 결국 한 발을 짚고 자전거를 세웠다. 뒤에서 누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더니 오노다였다. 그는 자전거를 내 옆에 세우고는 “이마이즈미군, 어디 아파?”하고 물어왔다. 언제나 그렇듯 상냥한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먼저 가.”
“정말 괜찮은 거야?”
“그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물어본 오노다는 나를 앞질러 나아갔다. 오노다가 나보다 한 바퀴가 더 많았던가? 아니면 방금 전에 한 바퀴 앞서게 된 건가? 원래는 이런 것들이 머릿속 한 구석에 박혀 있었고 절대 따라잡히지 않겠다는 일념이 나를 달리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숨을 뱉고 자전거에서 잠시 내리려는데 누군가 옆에 자전거를 세웠다. 건네 오는 인사말도 없어 고개를 돌리니 나루코가 서 있었다. 금방이라도 총알처럼 달려 나갈 듯 보이는 자세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의 페달은 멈춰 있었다.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앞에 놓인 길에 눈이 쌓여있고 그 위로 수많은 바퀴 자국이 나 있었다.
“뭐냐.”
“뺀질이 너 나한테 지고 한 발자국도 안 움직였구만.”
“지다니? 벌써 선 넘은 것처럼 굴기는.”
“내가 아까 한 번 제쳤으니 네가 진 거지. 이기고 지는 게 별 건감?”
버릇처럼 말을 맞받아치다가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뭐라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예전에는 어땠더라. 예전이라고 할 것도 없이 어제는 이것보다 한마디는 더 했던 것 같다. 날이 갈수록 입안에 헛숨만 물고 있는 듯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뺀질이 너 요새 뺀질뺀질하지가 않당께. 재수 없게.”
“잘 됐네.”
“잘된 게 아니여!”
버럭 질러오는 소리에 도로 옆을 보았다. 나루코의 시뻘건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절대로 꺾이지 않을 것 같은 의지가 그 안에 있었다.
“내가 한 바퀴 앞이니까 한 바퀴 더 뛰고 오는 거여. 후딱.”
“뭐?”
“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께.”
나루코의 눈은 진심이었다. 내가 달리다가 도중에 포기하고 자전거에서 내리더라도 이 자리에서 내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내가 가만히 있자 나루코의 손바닥이 내 허리를 꾹 눌렀다. 크진 않지만 단단한, 수없이 핸들을 꺾어 쥐었을 강건한 손이 힘껏 나를 밀었다. 나는 그의 손이 만들어낸 길을 따라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뒤따라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시작은 선배들이 다리를 놓아준, 다소 거리가 있는 학교와의 연습 시합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시합에서 나는 하나의 거대한 벽을 보았다. 그것은 오노다도, 나루코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노다는 늘 그렇듯 금방 털고 일어나 모두에게 웃었고 나루코는 분에 찬 모습을 보이며 연습의 양을 늘렸다. 나는 어느 쪽도 아니었다. 그 뒤로 나는 자전거가 달릴 수 있는 모든 길에서 벽을 보았다. 그것은 까마득해서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벽이었다. 모든 주행에서 그 벽을 타고 오르는 기분을 느꼈다. 무거운 추를 단 것처럼 페달이 묵직했고 조금만 달려도 쉽게 몸이 지쳤다.
겨우내 한 바퀴를 돌아왔을 때, 나루코가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는 한 손을 들어 흔들어 보이기까지 했다. 귓불과 뺨이 빨갛게 얼어있는 얼굴에 시원스런 웃음이 그려져 있었다.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가 좁혀지자 그가 달리려는 듯 앞을 보았다. 나는 땅을 짚은 채 나루코를 불렀다. 나루코가 다시 한 번 돌아보았다.
“넌 보이지 않는 거냐?”
높고 단단한 벽이. 마저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나루코는 뭐가? 라고 묻지 않았다. 웃음 짓고 있던 그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는 한 손을 뻗어 앞에 놓인 길을 가리켰다.
“하늘까지 닿은 거 말인감? 무시무시하지.”
“그런데도 달릴 수 있는 거냐?”
“그래서 달리는 거지. 나는 저 벽을 넘고 싶으니께!”
나루코 역시 벽을 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일본 제일의 선수라면 클라이머도 기겁할 저 벽을 올라주는 것이 도리지! 안 그런감?”
그 역시 수없이 벽을 오르고 그만큼 추락해왔던 것이다. 어쩌면 오노다 역시 그랬을 것이다. 나는 다시 한 번 눈앞의 벽을 보았다. 내가 헤매고 있는 이 길을 누군가가 너무 쉽게 오르는 것을 분명 보았다. 하지만 수없이 추락한 대가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페달에 발을 디뎠다. 그러자 나루코가 씨익 웃으며 페달을 세게 밟았다. 질척한 땅을 힘차게 밟자 거대한 벽이 조금 낮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몸을 얼렸던 찬 기운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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